세계 각국에서 금 사재기 열풍이 불고 있다. 특히 고성장을 구가해온 아시아의 신흥국에선 자산 보유 수단으로 금 매입 붐이 확산되는 추세다. 살인적으로 물가가 오르고 통화가치가 폭락한 베트남 등 일부 국가에서는 부동산 거래 등에서 금이 화폐 대용으로 사용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유가 급등으로 인플레 우려가 커지고 기축통화 역할을 해온 달러화 가치도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일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7월21일자)에 따르면 요즘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는 37.5g중량의 금화가 자국 통화인 동이나 달러보다 선호돼 고액권 화폐 대용으로 인기다. 시내 수백개의 보석상에서는 금화를 사려는 사람들이 넘쳐나고,아파트나 상가 등 고가 거래의 경우 현금 대신 금화로 결제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금 수요의 95%를 수입에 의존하는 베트남은 올 상반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2배 늘어난 70g 정도의 금을 수입했다. 금값은 g당 2만8500원 선으로 지난 상반기에 41%나 뛰어 소비자물가 상승률(26.8%)을 훨씬 앞질렀다. 이처럼 금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때문이다. 상반기 소비자물가는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식료품값은 1년 전보다 60% 뛰었고,외식가격도 30% 이상 상승했다. 경제 불안으로 은행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것도 금 수요 증가의 배경이 되고 있다.

중국 인도 중동 등 경제가 급성장하는 신흥국에서도 금 사재기 붐이 일어나고 있다. 국별 금 투자 수요를 보면 이런 현상이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해 중국의 금 투자 수요는 2000년과 비교해 3.7배 늘어났다. 인도는 2.1배,사우디아라비아도 2.3배 증가했다.

고성장 중인 중국은 개인 금거래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덕분에 금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2001년 보석용 금의 고정가격제가 폐지됐고,2004년부터는 개인 사업자들도 금 수출입을 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상하이에 금거래소가 개설된 2002년부터 금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다. 인도에서도 금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금 거래를 자유화한 인도에서는 최근 10년 새 금 수요가 4배나 늘었다. 유가 급등으로 오일머니가 넘쳐나는 중동 각국에서도 부유층들이 자산을 금으로 보유하는 경향이 확산되면서 금 사재기가 번지고 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특히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ㆍ11테러' 이후 달러 자산을 처분해 금으로 바꾸는 부호들이 많아졌다.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 금 수요가 늘어나고 투기자금도 가세하면서 금값은 치솟고 있다. 지난해 8월 온스당 648달러였던 금값은 지난 3월 중순 1000달러 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후 5월 초 848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으나 다시 강세로 전환,21일 현재 963.1달러를 기록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인플레와 정국 불안 등의 리스크로부터 자산을 지키기 위해 금을 매입하려는 욕구를 무시하긴 어렵다"며 "글로벌 신용경색 등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대를 맞아 부의 보유수단으로 금의 가치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