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인사' 논란은 어김없이 벌어져 왔다. 집권 세력은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것을 알면서도 이런 인사를 감행한다.

군사정부(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는 '군화발',문민정부(김영삼 대통령) 때에는 '등산화'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을 정도다. 국민의 정부(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지역 연고를 앞세운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참여정부(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코드 인사'가 논란이 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안택수 전 한나라당 의원이 최근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에 임명되면서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왜 되풀이되나

낙하산 인사는 '정치권이나 관가에 연줄을 댄 전문성이 없는 인사를 공기업 사장 등에 임명하는 구태의연한 관행'을 말한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정권을 잡으면 직ㆍ간접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가 3000개 정도"라며 "워낙 챙겨줄 수 있는 자리가 많기 때문에 정권 창출을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 필요한 인재를 모으는 데 낙하산 인사가 '순기능'을 하는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다.

정권 창출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매몰차게 외면하면 정권 내부의 지지 기반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공기업을 민영화하고,민영화하지 못하는 곳은 민간에 경영을 맡기겠다'고 천명한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낙하산 인사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 실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내정설이 돌고 있는 정형근 한나라당 전 의원이 공모라는 절차를 거쳐 임명될 경우 낙하산 인사에 대한 논란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민간에서 뽑는다는데

이명박 정부는 '규모가 크고 경쟁 원칙이 필요한 한전 등 대형 공기업에는 민간 전문가를 뽑겠다'는 원칙을 밝힌 바 있다. 한국전력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 사장을 민간인 가운데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재공모 절차를 밟고 있는 이들 공기업 가운데 한전과 석유공사 사장 자리에는 "에너지 공기업 사장은 최고를 뽑으라.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응모를 권유하라"는 청와대의 방침이 알려지면서 민간 최고경영자(CEO) 출신들이 실제로 대거 지원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그 기관을 잘 알고 가장 잘 경영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며 "낙하산이라는 말은 결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일부 공기업에만 국한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는 "논공행상에 따른 낙하산 인사가 다른 공기업에서 계속된다면 정부가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공기업 개혁에 대한 다수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도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낙하산인가,우산인가

민간인 가운데서 CEO를 뽑는다고 하더라도 '민간인은 능력이 있고,공무원은 능력이 없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공무원들도 좋은 CEO 후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경제원 출신의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은 4연임을 할 정도로 민간 대주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일부 공기업에서는 "능력이 있다면 정치인 출신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신보 노조는 안택수 전 의원에 대해 "낙하산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며 수용 의사를 적극적으로 내비쳤다. 기보와 신보 통합 등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산(보호막) 역할을 해줄 '힘있는 인사'라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반면 진동수 전 재정경제부 차관이 수출입은행장으로 오는 것에 대해서는 "낙하산 인사"라며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조직 논리에 따라,주변 여건에 따라 낙하산 인사를 환영하기도,반대하기도 한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