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의 해결을 위해 방북했다 돌아온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이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사건 경위를 설명한 내용은 그동안 제기된 각종 의혹을 해소하기엔 매우 부족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북측으로부터 남북 공동조사 제안을 거절당한 채 돌아온 현대아산은 사건 실체규명에서도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해 사실상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온 게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윤 사장이 이날 설명한 사건 경위는 방북일정 중 직접 현장을 찾아 실측한 내용과 북한 군당국의 조사보고서를 토대로 하고 있다.

윤 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박씨는 사건이 발생한 지난 11일 오전 4시18분에 숙소인 비치호텔에서 나와 해수욕장 해변을 따라 걸어갔으며 군사경계선을 넘어 800m 가량 북한 영내로 진입했다가 북측 초병 1명에게 발견됐다.

초병은 3차례 경고를 했지만 박씨가 황급히 뒤돌아 뛰어가자 추격을 시작했으며 거리가 멀어지자 4시55분을 전후해 공포탄을 1발 쏜 뒤 실탄 3발을 쏴 군사경계선 300m 부근까지 뛰어간 상태였던 박씨를 쓰러뜨렸다는 게 윤 사장의 설명이다.

일단 주요 의혹 중 하나였던 비상식적일 정도로 빠른 박씨의 이동 속도는 윤 사장의 설명을 통해 다소 풀리는 면이 있다.

당초에는 윤씨는 20분 안에 성인의 조깅속도로 3∼3.3㎞를 갔다는 계산이 나왔지만 이번 설명을 통해 30∼40분 내에 2.4㎞를 이동했던 것으로 수정되면서 박씨의 이동속도는 `빠른 걸음'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낮춰졌다.

그러나 총의 격발 수와 사고 당시 북측 초병의 대응방식 등에서는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

북한군 초병은 공포탄 1발과 실탄 2발을 쏜 것으로 최초 보고됐지만 이번 윤 사장의 발표에서는 경고사격 1번에 조준사격 3번 등 모두 4발이 발사된 것으로 고쳐졌다.

이는 사건 목격자인 대학생 이인복씨와 또 다른 증인인 여성 관광객 이모씨가 "총성은 두 발 밖에 안들렸다"고 공통되게 주장하는 내용과 더 격차가 벌어지는 내용이다.

더구나 북한 군당국의 조사보고서에는 초병이 박씨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고 나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무리 초병이 모래사장 위에서 추격했고 박씨가 다져진 해안가를 달렸다고 해도 군인 보다 중년 여성이 더 빨리 이동할 수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초병이 박씨의 신분을 알아보기 힘들었다는 게 북측의 입장이지만 증인들은 당시 사고 현장이 훤히 밝은 상태였다고 주장하고 있고 윤 사장도 현장 답사를 통해 해당 시각이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는 됐다고 말하고 있다.

아울러 북측에서 파악했다는 박씨의 피격 시점인 `오전 4시55분'도 증인들이 주장하는 `오전 5시20분 전후'와는 거리가 있다.

박씨가 호텔을 나선 시각을 말해줬다는 CCTV가 실제 시간보다 12분50초 빠르게 시간이 설정돼 있다는 점도 의아스런 부분이다.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 CCTV의 시각이 아날로그 시계처럼 느려지는 경우가 없다고 가정한다면 애초에 시간을 10분이나 15분도 아닌 `12분50초'나 당겨 입력했다는 것인데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쓰는 CCTV의 시간을 왜 그렇게 설정했을지 설명이 안된다는 것이다.

윤 사장은 "최초 보고가 이번 설명과 다른 것은 정확한 현장 조사나 실측을 통해 이뤄진 게 아니라 눈으로 대략 가늠한 결과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아산과 북측이 실측을 통해 정확하게 파악했다며 내놓은 설명마저 의혹을 부추기고 있어 이번 설명 또한 `말바꾸기'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안 희 기자 prayer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