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사학연금 등 연기금이 국내 증시의 새로운 매수 주체로 급부상하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1500선까지 떨어지면서 가격매력이 커지자 자금여력이 풍부한 연기금이 주식 매수를 늘리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 하반기 연기금들이 주식을 추가 매수할 수 있는 여력은 약 8조원에 이른다. 증시 전문가들은 외국인의 매도공세에 맞서 연기금이 저가 매수에 나설 경우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은 지난 주말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9거래일 연속 순매수했다. 이 기간 누적 순매수 금액은 약 5000억원에 그치는 수준이지만 이달 들어 하루도 빠짐없이 매수우위를 보인 것이다.


특히 외국인투자자들의 지속적인 매도공세에 맞설 만한 매수주체가 없어 코스피지수가 급락하던 상황에서 연기금들이 매수규모를 늘리면서 시장 전반의 투자심리를 안정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국민연금의 경우 이달 들어 장중 코스피지수 1500선이 깨지는 등 급락세를 보이자 약 2800억원을 증시에 투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주식매수에 나섰다.

지난 6월 한 달 동안 연기금의 순매수 규모는 630억원으로 기관 전체 순매수의 3.1%에 불과했지만 지난 주말엔 이틀 연속으로 50%를 넘어섰고 코스피지수도 이틀째 상승세를 나타냈다. 연기금은 지수방어에 기여도가 높은 대형주에 매수세를 집중하고 있다. 지난주(7~11일)에 연기금은 포스코(355억원) 신한지주(269억원) 삼성전자(220억원) GS건설(209억원) 현대중공업(174억원) KT(160억원) 등 업종별 대표주를 대거 순매수했다.

주요 연기금들의 하반기 추가 매수여력은 약 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올해 국내 주식 집행 목표치가 9조5000억원인 국민연금의 주식매수 여력은 연말까지 7조원 수준에 달한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지수 1500 수준은 가격 매력이 높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해 저가매수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약 4100억원의 주식매수용 자금을 보유한 사학연금도 매입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중이다. 이윤규 사학연금 자금운용단장은 "가격매력이 충분한 수준까지 주가가 하락했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주식매수에 나설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사학연금은 현재 17.5%인 주식비중을 연말까지 25%로 확대,올해 주식투자 목표액을 1조7700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현재 1000억원의 주식 매수여력을 지닌 지식경제부 산하 우정사업본부도 자산의 5%로 제한된 주식투자 비중을 최대 30%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하반기 주식 수요는 상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식 투자비중을 지금의 2배인 10%로 늘리더라도 3조원의 주식 매수여력을 갖게 되고,이를 30%까지 확대할 경우엔 주식을 사들이기 위한 '실탄'이 15조원 규모로 늘어나게 된다.

외국인은 올 들어 지난 11일까지 약 20조원을 순매도해 이미 지난해 연간 순매도액(약 24조7000억원)의 80% 이상을 팔아치웠다. 증권업계는 외국인의 추가 매물이 나와도 연기금이 보유한 여유자금이 증시의 '구원투수' 역할을 충분히 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재훈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코스피지수 1500선은 주가수익비율(PER) 약 9배 수준으로 분명한 저평가 상태란 점에서 투자여력이 있는 연기금이 주식매수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며 "지수 조정 때마다 연기금의 분할매수세가 꾸준히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