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매물이 한번 팔리면 그 가격이 곧 시세가 돼 버립니다.

수요자들이 급매가 아니면 거들떠 보지 않기 때문이죠.적체된 급매물보다 가격을 더 후려친 매물이 나오는 악순환이 시작됐습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공인중개사)

"2000만~3000만원 싸게 급매로 내놓아도 집이 나가지 않아 큰 일이라는 고객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수요가 워낙 없어 급매가격 자체가 공정가격(시세)이 돼버렸기 때문이죠."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재테크팀장)

주택시장이 위축되면서 일반 거래가보다 싸게 나오는 급매물 가격이 곧바로 시세로 굳어지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집값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서울 강남권 등 재건축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의 양도세 중과 회피,대출 만기도래와 금리 급등에 따라 서둘러 집을 팔려는 급매물이 홍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급매물이 소화되면 시장가격은 급매가보다 높은 정상가로 회복된다.

하지만 요즘같은 매수자 우위 시장(Buyer's Market)에선 급매가가 그대로 시세로 굳어져 버리기 일쑤다.

이 같은 현상은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등 재건축 밀집지역과 평촌신도시,용인 등 고가 중대형 단지에서 이미 일상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동네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잠원동 일대다.

이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30평형대 이상 중.대형 아파트 매물의 20% 정도가 양도세 중과를 피하기 위해 내놓은 급매물로 파악되고 있다.

반포자이(12월 입주) 반포주공2단지(래미안,내년 3월 입주)의 5800여 재건축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다주택자들이 입주(소유권 이전등기) 전에 기존주택을 처분하기 위해 매물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잠원동 양지공인의 이덕원 중개사는 "급매물은 실제 매매가 대비 3% 정도 싸게 나오고,매도호가에 비하면 10% 이상 싸지만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급매가가 그대로 시세로 굳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 잠원동 L아파트 140㎡의 경우 매도호가는 현재 12억5000만~13억5000만원이지만 급매가는 12억원 선이다.
강남권에선 요즘 '급매값이 시세'
하지만 이 아파트가 실제 거래되려면 11억원 대 후반까지 값을 낮춰야 한다는 게 주변 중개업소들의 한결 같은 얘기다.

국토해양부에 지난 3월 신고된 이 아파트 실거래 가격은 12억2000만원이었다.

분당과 함께 신도시 집값 하락을 이끌고 있는 평촌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기 안양시 평촌동 대원공인의 권재홍 중개사는 "매도호가 5억5000만원대인 105㎡ 아파트를 5억2000만원 이하로 내놓아야 팔리는 분위기"라며 "최근 매매가보다 5% 이상 싸야 급매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렇게 급매로 내놓아도 중.대형 아파트는 거래가 거의 안 된다"며 "사실상 시장이 멈춰서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급매가격이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입주 날짜가 다가올수록 매도자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한창 집값이 오르던 2005~2006년 집값의 60%까지 대출을 받아 집을 산 투자자들이 대출만기가 가까워지면서 내놓은 급매물까지 나오고 있다.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등으로 다른 은행 대출로 갈아타지 못하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도 지난 5월 중순 6.5~8%에서 현재 7.5~9%로 급등하는 등 금리부담까지 가중되고 있어 급매물은 당분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