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축구의 한(恨)을 씻어 준 구세주는 백발이 성성한 칠순의 '현자' 루이스 아라고네스(70.스페인)였다.

아라고네스 감독이 이끄는 스페인은 30일 오전(한국시간) 오스트리아 빈 에른스트하펠 슈타디온에서 열린 2008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8) 결승에서 '전차군단' 독일을 1-0으로 꺾고 정상을 밟았다.

스페인이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린 것은 1964년 유럽선수권대회 이후 무려 44년 만이다.

1938년생인 아라고네스 감독은 69세 338일의 나이로 역대 유럽선수권 최고령 우승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2004년 대회에서 그리스를 이끌고 외국인 감독으로 사상 첫 우승팀 감독의 영예까지 함께 누렸던 오토 레하겔이 갖고 있던 종전 기록을 4년 만에 갈아치웠다.

레하겔 감독은 아라고네스 감독과 동갑내기다.

스페인의 '무관 징크스'를 털어낸 아라고네스 감독은 1960-70년대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전성기를 이끈 스트라이커 출신이다.

1974년 현역 은퇴 후 지도자의 삶을 시작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만 네 차례나 지휘봉을 잡았고, 바르셀로나, 에스파뇰, 발렌시아, 세비야, 발렌시아, 마요르카 등 30년 간 줄곧 스페인 클럽을 이끌었다.

2004년 스페인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그는 2006 독일월드컵 16강에서 프랑스에 1-3으로 패해 쓴 잔을 들었다.

아라고네스는 대표팀 사령탑 부임 이후 종종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2004년 10월 대표팀 훈련 도중에는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를 격려하면서 "네가 그 검둥이(프랑스의 티에리 앙리를 지칭)보다 낫다"며 인종차별적 표현을 하는 장면이 TV에 잡혀 곤욕을 치렀다.

지역 감정이 특별한 스페인 선수들을 한 목표를 향해 융화시킬 만한 카리스마가 없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고,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대표팀의 간판 공격수 라울 곤살레스 등 일부 노장들을 이번 대회 명단에서 빼면서 다시 언론과 팬들의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라고네스 감독의 고집은 결국 '무관의 제왕' 스페인을 유럽 축구 정상에 올려놓았다.

이번 대회에서 페르난도 토레스와 다비드 실바, 세르히오 라모스 등 젊은 선수들을 중용했고, 스페인의 조직력은 경기를 치를 수록 짜임새를 더해갔다.

마침내 스페인은 전승으로 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아라고네스 감독은 "스페인이 1964년 우승을 차지했을 당시 대표팀의 일원으로 대회 예선에 참가했지만 출전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아라고네스 감독은 "스페인은 축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델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팀을 주목할 것이다.

스페인은 앞으로 더 많은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월드컵에서도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날 독일과 결승은 아라고네스 감독이 스페인 대표팀 감독으로 치르는 마지막 경기였다.

아라고네스 감독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놓는다.

터키 페네르바체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그는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그는 "내가 후임 감독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선수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hosu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