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기술기업만 M&A 20개 全계열 흑자 일궈

최평규 S&T그룹 회장은 '얘깃거리'가 많은 기업인이다.

온갖 굴곡을 헤치고 나오면서 맨손으로 '일가'를 이룬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최고경영자(CEO)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그의 이력에는 기업 인수·합병(M&A) 성공 스토리도 더해졌다.

1979년 당시 27세에 불과했던 최 회장은 17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만든 300만원의 종자돈을 들고 직원 6명인 삼영기계를 설립했다.

아버지와 형,매형의 집도 은행에 담보로 잡혔다.

사업 자금을 마련한 뒤 곧바로 미국으로 떠났다.

열교환기 부품을 만드는 기계인 '피닝 머신'을 수입하기 위해서였다.

'번 돈으로만 M&A 추진한다' 원칙

'10·26 사태'가 터지면서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대통령이 서거했는데 한국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불안감에 기계를 수입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술로 세월을 보내기를 몇 달.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정부가 1980년 원·달러 환율을 600원에서 480원으로 떨어뜨린 이른바 '1·12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이 조치로 기계 수입가격은 20% 정도 싸졌다.

최 회장은 곧바로 기계 도입 계약을 맺고 사업에 나섰다.

창업 후 3~4년 잘 나가던 그의 사업에 첫 번째 위기가 닥쳤다.

공장에 불이 나 애지중지 아끼던 피닝 머신이 모두 타 버렸다.

최 회장은 의지를 꺾지 않았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승화시켰다.

불탄 기계를 하나하나 뜯어보던 최 회장은 자체 제작이 어렵지 않다는 판단을 했고,특허에 걸리지 않는 수준으로 재조립했다.

이전 기계와 성능이 비슷한 신형 기계 세 대를 만들어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몇 해 지나지 않아 매출은 세 배로 불었다.

1996년에는 국내 납품길이 막히는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최 회장의 회사에서 납품받던 한국중공업이 제품을 직접 만들겠다며 주문을 끊어버렸다.

최 회장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세계적 보일러 회사인 미국의 CE를 무작정 찾았다.

저돌적이고 열정적인 영업으로 CE를 감동시켰고,주문도 따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지만 그는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

내수 시장을 접고 해외 시장에 진출한 덕분에 국내 시장 침체로 인한 타격이 거의 없었다.

달러당 800원 수준이던 환율이 2000원 선까지 치솟으면서 매출액도 커졌다.

최 회장은 외환위기 이후 벌어들인 돈으로 '제2의 도약'에 나섰다.

적극적인 M&A를 통해 기업 규모를 '그룹' 수준으로 키웠다.

2002년 경우상호저축은행(현 S&T저축은행) 인수를 시작으로 2003년 통일중공업(현 S&T중공업)과 호텔설악파크,2004년 대화브레이크(현 S&T브레이크),2006년 대우정밀(현 S&T대우),2007년 효성기계(현 S&T모터스)를 잇달아 사들였다.

최 회장에게 'M&A의 귀재'라는 별칭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알짜 매물'을 식별해내는 비결은 뭘까.

최 회장은 '기술력'을 첫 번째로 꼽는다.

기술은 있는데 회계상 혹은 경영상 문제가 있는 회사를 집중적으로 인수했다는 설명이다.

지금도 그는 '기술보국(技術報國)'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엔지니어가 나라의 보배'라는 신념이 확고하다.

최 회장 자신도 엔지니어 출신이다.

'번 돈으로만 M&A를 추진한다'는 것도 최 회장의 일관된 지론이다.

재무구조가 받쳐주지 않는 M&A는 독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룹의 모회사 격인 S&Tc는 회사 설립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고 이렇게 마련된 돈이 M&A 실탄으로 쓰였다.

S&T그룹이 품은 회사들은 하나같이 '효자'로 거듭났다.

만성 적자에 허덕이던 S&T중공업은 인수 첫해를 제외하곤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방위산업 의존도가 높던 사업구조를 과감히 다각화한 것이 변신의 기폭제였다.

독일 중국 등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도 도움이 됐다.

2006년 새 식구가 된 S&T대우도 연 매출 5000억원이 넘는 '알토란 회사'로 바뀌었고 작년에 인수한 S&T모터스도 수출 비중이 높아지면서 성장성이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철저한 현장경영…회사 장부도 전직원 공개

S&T그룹은 연간 매출 1조6000억원,종업원 3700명의 탄탄한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국내외 계열사만 20여개에 달한다.

최 회장은 여전히 '현장'에 있다.

날마다 이곳 저곳을 돌며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개선책을 찾는다.

남들이 다 하는 골프도 안 친다.

대신 직원들과 노래방에 가서 스트레스를 푼다.

강성으로 유명했던 S&T중공업과 S&T대우 등 계열사 노조의 마음을 몇 년 만에 돌려세운 원동력도 철저한 현장 경영에서 나왔다.

'투명 경영'에 대한 의지도 노사 간 화합을 이끈 요인이다.

최 회장은 주력 계열사들을 M&A 할 때마다 회사의 기록과 장부를 전 사원에게 공개했다.

분기마다 '경영 설명회'를 통해 실적을 숨김없이 밝히는 것은 기본이다.

노사 간 신뢰는 이렇게 싹이 텄다.

S&T그룹은 최근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마무리했다.

얽혀 있던 지분구조를 깨끗이 정리함에 따라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최근엔 자동차 부품업체인 한국델파이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최 회장의 '뚝심 경영'은 여전히 또 다른 '얘깃거리'를 만들고 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