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 예당아트TV 대표·가수 sungsooc@yedang.co.kr >

요즘 글씨가 잘 안 보인다.얼마 전 미국 방문길에 차를 렌트했는데 한밤중에 아는 분 집을 찾아가기 위해 지도를 보느라 고생했다.'아니 벌써!'하는 마음과 나이에 대한 상념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30대 땐 어느 소녀의 '아저씨'란 호칭에 싸늘한 시선으로 째려(?)보면서도 가슴이 철렁했었다.지금은 어느새 아저씨란 호칭이 익숙하지만 아직은 오빠라고 생각하며 산다.앞으로 할아버지란 호칭과 부딪치면 가슴이 얼마나 더 서늘해질까.

물론 세월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나이가 들수록 가까운 게 안 보이는 것은 사물을 멀리보고 마음을 넓게 가지란 뜻일 게다.남자가 늙으면 여성호르몬이 많아져 잔소리가 늘고 잘 삐친다고 한다.

그래서 인생을 관조하란 말이 생기고,신은 인간이 늙어 외로울 때 마음의 위로가 돼라고 자식보다 손자의 재롱이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고 한다.

요사이 깜빡하는 경우도 많다.전화번호 외우는 것은 꿈도 못 꾼다.단축번호로 전화 거는 일이 많다 보니 어떤 때는 집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한번은 무대에서 중요한 분을 소개할 차례가 됐는데 갑자기 그 분 이름이 떠오르질 않아 눈앞이 캄캄해지고 식은땀이 흘렀다.내가 아는 어떤 분은 요즘 적자생존이란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적어야 산다는 뜻이란다.오죽하면 가수 조영남씨는 낡아빠진 군복 이름표에 아이들 생일을 적어놓고 다닐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변에 "아! 옛날에는 어땠는데…"하는 분들이 많다.주로 젊은 시절 호기와 무용담,남녀상열지사 같은 얘기다.

듣고 있노라면 측은한 생각과 자괴감이 겹쳐온다.어떤 분은 골프장에서 티샷할 때마다 "옛날에는 300야드씩 나갔다"고 말한다.그럴 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대신 지금은 그린 근처에서 더 잘 하시잖아요.

"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게 세상 이치다.

마지막으로 주책이 없어졌다.아내 아이들과 TV 채널 싸움을 하고,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릴 때가 많아졌다.또 식당에서 나이가 어려보이는 종업원에게 자연스레 반말(?)을 할 때면 내 자신이 싫어진다.

동시에 변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아직도 여자대학 앞에 가면 쑥스러움과 설렘이 있다.

'젊음' 운운하기엔 너무 젊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인생 후반으로 접어드는 동지들에게 제언하고 싶다.

'바람이 불면 벽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풍차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무엇을 만들건 나이가 들어 갈수록 인생의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