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과 관련된 민원 때문에 업무를 정상적으로 못 볼 지경입니다."

서울시내 한 구청장은 19일 재개발 얘기가 나오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명박 정부가 도심 재개발사업을 활성화할 것으로 보고 '지분 쪼개기'는 물론 조합원들의 민원.분쟁,투기행위 등이 극성을 부리며 망국병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그는 한탄했다.

그는 "선진국의 공영개발방식을 도입하는 등의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신문이 현행 재개발 제도와 관련,일선 구청장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부작용이 예상보다 심각했다.

◆'강남불패'에서 '재개발 불패'

"강남불패 신화가 깨지더니 이젠 '재개발 불패'란 신화를 믿는 것 같아요."

강북의 한 구청장은 "요즘 강북의 재개발예정지에는 강남 아줌마들이 '언젠가는 재개발이 될꺼야'라는 믿음을 갖고 단독.다세대주택을 중개업소와 법원경매에서 싹쓸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다보니 재개발 과정에서 △지분쪼개기 등 투기행위 성행 △집.땅값 폭등 △조합추진위 난립.조합원 갈등으로 인한 사업 지연 △사업 진행상의 잦은 비리 △원주민 정착률 저조 △개발이익 분배 논란 등 온갖 문제점을 낳고 있다고 구청장들은 지적했다.

재개발 관련 갈등은 사업 추진 초기단계부터 시작된다.

조합결성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여러 개의 추진준비위원회가 난립되면서 소란스럽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아현뉴타운 내 공덕5주택재개발구역의 경우를 살펴보면 현행 재개발 방식에 관련된 문제가 총체적으로 집약돼 있다.

2003년 사업 추진에 나선 이후 2개의 추진위가 조합결성의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등 조합원 갈등이 깊어진 데다 지분쪼개기가 성행(200여개 증가)하면서 관리처분(1월)까지 5년이란 세월을 허비했다.

우여곡절 끝에 오는 8월 착공을 앞둔 단계까지 왔다.

하지만 일부 조합원 간 소송이 아직도 계속 되고 있어 사업 진행이 순조로울지는 미지수다.

◆땅값 폭등과 얼룩진 비리

사업 추진 과정에서의 비리 등 불투명성도 단골 메뉴다.

현행 국내 도시정비사업에서는 사업 초기부터 조합과 시공사,설계.철거 등 용역업계 간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일부 재개발 추진지역의 경우 조합추진위원회가 동의서를 받아내기 위해 외주용역업체를 고용해서 동의서 1장에 20만~30만원씩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동의서를 모으고 있다.

이 비용은 모두 시공업체나 설계업체,철거용역업체들이 제공하는 뒷돈으로 충당하고 있다.

땅값.집값 폭등 문제도 반드시 손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국내 재개발 구조에서는 대부분 구역의 땅값이 사업 단계별로 가격이 뛴다.

이러다보니 지분쪼개기 같은 투기행위가 성행할 수밖에 없다.

왕십리뉴타운3구역의 경우 재개발추진위원회 승인을 받은 2004년 7월부터 작년 11월까지 3년 새 33㎡ 미만 지분(3.3㎡당 2004만원)이 무려 2배(4226만원) 이상 급등했다.

◆선진국형 공영개발 필요

현행 재개발의 근본적인 문제는 재개발사업이 마무리되고 난 이후이다.

땅값 급등과 투기행위,사업 진행상의 비리 등의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된 재개발 구역의 경우 당초 해당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의 70~90%가 과도한 비용부담 때문에 떠난다는 점이다.

현재 서울지역 재개발구역의 원주민 정착률은 10~30% 선에 불과하다.

주택도시연구원 임서환 연구위원은 "영국 프랑스 등 선진 외국 재개발의 경우 원주민 정착률이 무려 90~100%에 이른다는 점과 비교하면 현재 우리의 재개발 방식은 크게 잘못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도 이제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돌입한 만큼 재개발 방식에 공공의 역할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서 선진국형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