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기상예보 부정확성에 대한 변명으로 장비 타령을 해온 기상청이 이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최첨단장비를 사라고 준 돈으로 엉터리 불량제품을 샀다가 감사원에 딱 걸렸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지적한 내용을 보면 기가 막힌다.

기상청은 2006년 11억4120만원을 들여 일기상황을 관측하는 장비 'GPS 라디오존데'를 구입했다.

그런데 이 장비를 부착한 풍선을 띄운 2007년 부실 관측 횟수가 2006년 147회보다 무려 140% 늘어난 352회를 기록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새 장비는 세계기상기구(WMO)가 제시한 기준에도 맞지 않는 제품이다.

기준에 맞지 않는 제품을 살 때는 자체 실험을 40차례 이상 하도록 돼 있지만 기상청과 업체는 단 13차례만 실험을 했고,이마저도 비오는 날은 아예 하지 않았다.

해당 업체는 수입제품을 유통하는 업체에 불과했지만 기상청은 '국내 업체(?)에 입찰 참가 기회를 줘야 한다'며 억지 실험을 강행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정작 구입한 장비는 이렇게라도 억지실험한 모델이 아니라 성능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엉뚱한 모델이었다는 것.업자와 기상청 구매담당 직원 간 '뒷거래'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기상청은 그동안 일기예보가 틀렸다는 지적이 나올 때마다 '새 장비가 부족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슈퍼컴퓨터가 대표적이다.

기상청은 슈퍼컴퓨터의 필요성을 역설하다 정작 슈퍼컴 2호기를 들여온 후 예보 정확도가 높아지지 않자 '수치입력 모델이 잘못돼 그렇지 슈퍼컴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럴 거면 수백억원짜리 슈퍼컴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기상청은 벌써부터 "슈퍼컴 3호기를 사야 한다"며 지난 1일부터 이에 관한 정보 수집 활동에 나섰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기상청 예보관의 근무 기간은 평균 18개월에 불과하다.

업무를 익힐만 하면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장비탓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선무당이 장구 탓'하는 꼴이다.

슈퍼컴 3호기를 사기 전 인사시스템을 바꿔 예보관의 전문성부터 확보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

이상은 사회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