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정민ㆍ이홍식 엮어옮김,김영사)에 나오는 신숙주의 가르침입니다.
호걸은 누구나 꿈꾸는 이상이지만 '삼가는 자세'가 없으면 오히려 화의 근원이 되지요.
신숙주는 아들에게 일세를 호령하는 호걸이나 재주 높고 빼어난 인물이 되려 하지 말고 낮추고 비워서 근학하는 사람이 되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옛사람의 자식 교육은 이처럼 꼼꼼하고 따끔했습니다.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가면 호되게 나무라고 벼슬길에 나설 때는 더욱 겸손하라고 가르쳤죠.고산 윤선도의 아홉가지 가훈도 이 책에 소개돼 있습니다.
그는 74세에 함경도 귀양지에서 집안의 장래를 걱정하며 간곡한 당부편지를 큰아들에게 보내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으니 사람의 일도 늘 가득 찼을 때를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득 참은 덜어냄을 부르고 겸손함은 유익함을 준다는 지극한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뼈에 새기라"고 조언했습니다.
면앙정 송순은 천재지변으로 민심이 흉흉할 때 친구들과 어울려 술판을 벌인 자식들에게 "이는 머리 속에 살다보니 빛이 검어지고 사향노루는 잣을 따먹는 동안 배꼽에 잣향내가 스미는 것처럼 사람도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 물이 드는 부디 유익한 벗을 사귀라"고 충고했습니다.
명문(名門)이나 명가(名家)는 실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지요.
그래서 옛 아버지들은 자녀교육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숙종 때 남인과 노론의 당쟁에 휘말려 유배지인 진도에서 사약을 받은 김수항은 죽기 전 "언제나 겸퇴의 뜻을 지니고 집안에 독서하는 종자가 끊이지 않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을 받은 자식이라고 다 훌륭하게 됐을까요.
4대가 연거푸 형벌로 죽은 김수항의 집안은 모진 역경 속에서도 아버지의 당부를 지켜 가문을 되살렸지만 신숙주의 넷째아들은 '호걸 욕심'을 부리며 서른도 안 돼 재상이 됐다가 과욕으로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훌륭한 유훈보다 그것을 지키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사례지요.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