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원화가치가 주식시장에 미칠 파장에 투자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7일 증시 전문가들은 원화약세는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 강화 및 채산성 개선으로 이어져 주식시장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원자재 수입 기업의 비용 증가와 수입물가 상승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호재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의 근저에 글로벌 신용경색이라는 대형 악재가 자리 잡고 있어 이런 환율구조가 장기화될 경우 주식시장에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원.달러 환율 1천원대 재진입 =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 초반 1,009.8원까지 치솟아 2년2개월 만에 처음으로 1,000원대로 올라섰다.

글로벌 신용경색 여파로 원화가치가 추락하는 가운데 지난 주말 미국의 5대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이 유동성 위기를 시인한데 이어 JP모건에 헐값으로 넘어갔다는 소식에 전해지면서 주식시장도 충격에 빠졌다.

코스피지수는 오전 10시53분 현재 직전 거래일(14일) 대비 39.44포인트(2.46%) 급락한 1,560.82로, 올해 1월 말에 기록한 전저점(1,570선) 밑으로 떨어졌다.

국내 증권사들은 대체로 환율 급등 배경으로 ▲ 무역수지 3개월 연속 적자 ▲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 ▲ 해외펀드의 환헷지 청산 ▲ 글로벌 신용경색 등을 꼽았다.

그러나 원.달러 환율 급등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엇갈린 시각을 내놓았다.

◆"수출기업 수익성 개선 '긍정적'" = KB투자증권은 원.달러 환율 상승은 달러화 수요와 공급이 균형상태로 진입하면서 과도한 원화강세가 정상수준으로 회귀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서 수출기업의 수익성 개선 측면에서 주식시장에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정보기술(IT)와 자동차 등 대표 수출업종은 환율 급등 영향으로 가격경쟁력이 제고되면서 이익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증권사의 분석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50원 상승할 경우 삼성전자의 연간 순이익은 1조3천200억원 정도 늘어나며 하이닉스(2천730억원), LG전자(1천673억원), 현대차(1천627억원), LG필립스LCD(1천430억원) 등도 1천억~2천억원 정도 이익이 늘어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원자재 수입비용 증가 '부정적' = 그러나 원화약세로 인해 원자재를 수입하는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늘어나고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주식시장에 부정적이다.

정유와 화학, 철강 등의 업종은 원자재 수입비중이 높고 외화부채가 많아 원화약세 피해주로 꼽힌다.

정유업체인 SK에너지와 S-Oil은 원.달러 환율이 50원 상승하면 연간 이익이 각각 589억원, 704억원 정도 줄어들며 LG화학(135억원)과 효성(160억원), POSCO(210억원), 현대제철(172억원), 동국제강(494억원) 등도 100억원~400억원대 이익 감소가 예상됐다.

게다가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초래된 글로벌 신용경색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원화약세 근저에 있는 신용경색 여파도 고려해야" = 증시 전문가들은 달러화 대비 원화가치가 최근 '나홀로 약세'를 보이고 있는 근저에는 무역수지 적자의 주범인 원자재값 급등과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등 미국 신용경색의 여파가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신용경색이 지속하는 한 원화가치의 하락세는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들은 또한 원.달러 환율의 급등세가 이어질 경우 수출기업의 채산성 개선이라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자금의 대거 이탈 및 물가상승세 확대에 의한 실질 구매력 약화라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경수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환율은 상대적인 가격지표라는 점에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고 전제한 뒤 "수출 부문의 가격 경쟁력 및 수익성 개선 측면에선 긍정적이나 물가상승과 투자심리 불안을 조장하는 측면에선 악재"라며 중립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ho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