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슬픈 날을 끝까지 참고 견뎌라.그러면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지난 10년을 야인(野人)으로 보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과천정부청사로 돌아왔다.2005년 발간한 그의 책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삼성경제연구소刊) 머리말의 첫 문장으로 인용했던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현실로 이뤄내듯 그는 이명박 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금의환향했다.

강 장관은 예산과 재정운용에 대한 권한을 한손에 틀어쥐었다.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가 통합되면서 예산 기능과 세제,거시경제정책 기능이 기획재정부 한곳으로 모였다.금융정책국까지 품에 안았던 공룡부처 재정경제원에는 못 미치지만 각 부처의 예산을 틀어쥔 만큼 정부 내에서도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재정경제원 차관을 지낸 경험과 이 대통령과의 막역한 친분 등을 감안하면 그는 어느 누구보다 막강한 힘을 가진 경제장관으로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앞길은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이명박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7% 경제성장 달성은 강 장관이 주도해서 만들었지만 주변 여건은 거꾸로 가고 있다.세계 경제는 지난 7~8년간의 고성장을 마감하면서 침체기로 접어들었다.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국제금융시장의 혼란도 수습되지 않고 있다.이 때문에 기업과 소비자들의 심리는 매우 위축된 상태다.7% 경제성장 달성은 커녕 5%를 유지하는 것마저 힘든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세계잉여금을 '경기역진적 요소'라고 표현할 만큼 강경 감세론자인 강 장관은 앞으로 세금인하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공제폭을 확대하고 유류세를 인하하기로 확정한 데 이어 주택거래세 인하,임시투자세액공제 확대 등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세금 감면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실물경기가 급속도로 나빠질 경우 미국 정부가 1400억달러 규모의 세금환급에 나선 것처럼 강 장관도 세금환급 등 비상조치를 동원할 가능성이 있다.물론 아직까지는 국내 경기가 침체에 빠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른 감이 있지만,감세론자인 강 장관의 성향상 추경예산을 편성해 지원하기보다는 세금을 덜 받거나 되돌려주는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 등은 1년에 한 번 부과되는 세금인 만큼 서두르지 않고 올해 안으로 법개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근로자들이 납부하는 소득세 세율과 과표구간 확대 등도 적극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대외 부문에서는 원화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을 막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전 세계적인 약달러 추세로 인해 원화환율이 최근 하락세로 반전했는데,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상황에서 이를 방치하면 적자폭이 더 커지게 된다.국내 소비가 부진한 가운데 무역수지마저 적자 기조로 바뀔 경우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질 수 있기 때문에 환율 방어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강 장관은 지난 27일 인사청문회에서 "어느 선진국도 환율에 대해서 시장 자율에 완전히 맡기지 않는다.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하는 등 환율주권론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최중경 제1차관 역시 환율에 있어서는 강 장관 못지않은 강경론자다.이 때문에 환율은 올해 최대 정책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강 장관은 이와 함께 규제완화와 노사관계 제도화 등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그는 "일자리를 늘리려면 기업의 투자가 필요하고,이를 위해선 속도감 있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규제완화에 대한 의지는 매우 강하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