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지원 용처 강제하기는 어렵다"

남측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지원한 쌀 중 일부가 북한군 최전방 부대에 유출된 단서가 포착됨에 따라 대북 쌀 지원에 대한 모니터링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특히 인도지원 물자가 군량미로 전용된 정황이 정부 관계 부처간에 공유됐지만 적절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그간 북한에 제공된 식량이 주민들에게 제대로 제공되는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이번처럼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난 적은 없었다.

다만 남측이 지원한 식량 수송에 군용 차량이 사용된 단서가 파악돼 우리 당국이 문제제기를 했지만 `수송 차량이 마땅치 않아 군용 차량을 쓸 수 밖에 없다'는 해명을 듣고 넘어간 적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차원 대북 쌀 지원 현황 = 정부는 1995년 8월 발생한 대규모 수해 이후 거듭된 자연재해로 식량사정이 극도로 악화된 북한에 그해 15만t을 시작으로 거의 매년 쌀을 지원했다.

2000년부터는 차관 형식으로 제공했다.

2000년 30만t(외국산), 2002년 40만t(국내산), 2003년 40만t(국내산), 2004년 40만t(국내산 10만t.외국산 30만t), 2005년 50만t(국내산 40만t.외국산 10만t), 2007년 40만t(국내산 15만t.외국산 25만t)을 북에 직접 제공했다.

비록 차관이라는 명목을 걸긴했지만 인도적 지원의 성격이 더 강했다는게 중론이다.

2007년 쌀 차관의 경우 10년 거치 30년 상환 조건에 이자율은 연 1%에 불과하며 가격도 국산이 포함돼 있지만 국산보다 낮은 국제 시세에 맞춰 산정했기에 `사실상 무상지원 아니냐'는 것이 일반의 인식이기도 하다.

실제 쌀 차관 제공과 관련한 합의문에도 인도적 성격이 명시돼 있다.

2007년 4월18~22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13차 회의 합의문에 따르면 `남측은 동포애와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쌀 40만t을 차관방식으로 북측에 제공한다'고 돼 있다.

또 정부 차원과는 별도로 대한 적십자사가 수해 지원 명목으로 북에 쌀을 무상지원하기도 했다.

◇군량미 전용의 문제점 = 정부차원의 대북 쌀 지원이 차관 형태를 띄고 있는 한 용처에 대한 제한을 강제하기 힘들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또한 인도적 지원이라는 차원에서 분배에 대한 모니터링을 할 수는 있어도 특정 용도에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쌀 차관 합의문에 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당국자들은 설명한다.

지난 해 4월22일 남북이 채택한 `식량 차관 제공에 관한 합의서'에도 `남과 북은 쌀 수송시기 보장, 쌀 분배현장 방문 등 식량제공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한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지만 용도에 대한 언급은 없다.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북이 지원받은 쌀을 군용으로 전용한 것이 명시적인 합의사항 위반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군량미 전용은 식량난을 겪고 있는 일반 북한 주민을 돕는다는 쌀 차관의 인도적 성격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인도적 명목으로 제공되는 쌀이 군으로 간다는 것은 일반 여론이 용납할 수 없는 일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더욱이 이번에 우리 군에 의해 전용 혐의가 포착된 쌀 포대에는 적십자사 마크가 찍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무상으로 제공된 인도적 지원품을 군에서 사용한 것은 쌀 차관 전용 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남한이 지원한 질좋은 쌀은 군부대로 배분하고 그 양만큼 군이 보유한 묵은 쌀을 일반에 배분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모니터링 어떻게 진행돼 왔나 = 대북 쌀 차관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꾸준히 모니터링을 해왔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통일부는 "모니터링을 위해 우리 측 인원이 북측 식량공급소를 직접 방문, 분배과정을 참관하는 한편 지역주민들과 인터뷰를 실시해왔다"고 밝혔다.

차관으로 제공된 쌀 포장에 대한민국 표기를 사용하고 분배 결과를 통보받는 한편 2000년과 2002년 각각 한차례, 2003년 12차례, 2004년 10차례, 2005년 20차례 등에 걸쳐 현장 분배 확인을 했다는게 통일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북한에 상주하며 제공된 쌀의 최종 기착지까지 확인하지 못하는 한 전용을 원천적으로 막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당국자들은 토로하고 있다.

어쨌든 정부는 그간 북이 식량 지원품을 전용하고 있다는 첩보를 지속적으로 입수하고도 단호한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통일부는 이날 보도 참고자료에서 "그동안 대북지원 식량의 전용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며 통일부는 관계기관의 첩보를 공유해오고 있다"면서 "통일부는 분배투명성 제고를 위해 남북회담, 현장방문 등 여러 계기를 통해 북측에 이 문제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건 처럼 우리 군에서 포착한 정보 사항을 남북 당국간 회담 등에서 직접 거론하며 시정을 요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원론적 차원에서 분배 투명성 강화를 요구할 수 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통일부는 "분배투명성 확보 수준이 충분하다고는 인식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 분배투명성을 보다 강화해 나가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 남북간 접촉 등 계기시 지속적으로 제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모니터링 요원의 상주 등을 북이 수용하지 않는 한 현실적인 대안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한 정부 관계자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지원하는 측에서 공중에서 지원품을 살포하거나 모니터링 요원이 직접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것이겠지만 그런 방법은 지원을 받는 대상국의 권력체계 자체가 무너져 통제가 어려운 상태에서나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나라의 권력기구에 의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원조를 받는 나라 정부가 배분을 하게 하되, 그 과정을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수 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