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부 온천휴양지 구마모토(態本) 시내에 있는 피스풀호텔.
안정환(32.부산 아이파크)은 깔끔한 온천 호텔 복도에서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찬 채 서성인다.

치료실에서 막 마사지를 받고 나오는 길이다.

서른을 넘겨 팀내 최고참급이 된 그에겐 고된 훈련 후 꿀맛같은 휴식 시간도 그냥 흘려보내선 안 된다.

나이가 든 만큼 부상 위험이 커져 쉴 때도 끊임없이 보강 운동을 해줘야만 한단다.

지난달 말부터 시작된 K-리그 부산 아이파크의 일본 전지훈련. 이미 미야자키에서 열흘 강행군을 하고 2차 전훈지인 구마모토로 온 안정환의 입에선 단내가 난다.

얼굴도 몰라보게 핼쑥해졌다.

"많이 피곤하고 지친 상태죠. 지금이 딱 그럴 때예요"
1998년부터 2년 남짓 부산 대우 로얄즈 유니폼을 입고 K-리그 르네상스를 만들어냈던 주역 안정환.
유럽 3대 빅리그인 이탈리아 세리에A를 거쳐 일본 J-리그, 프랑스 르샹피오나, 독일 분데스리가를 '섭렵'하고 스타군단 수원 삼성에 잠시 몸담았다 8년 만에 돌아온 친정에 백의종군한 그의 눈빛에서 미련이나 회한을 느낄 만한 여지는 없었다.

'안정환, 이제 한물 간 선수 아냐'란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는 그는 "어차피 팬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매번 잘 하는 선수도 없어요.

그런 말에 신경 쓸 나이는 아니잖아요"라고 되물었다.

안정환은 1999년 21골, 7도움을 올리면서 리그 MVP를 차지했다.

당시엔 슛을 때리면 거의 골로 꽂히던 시절이었다.

작년 시즌엔 수원에서 25경기를 뛰면서 5골밖에 넣지 못했고 그나마 정규리그 득점은 제로였다.

안정환은 '돌아온 계기'부터 말문을 열었다.

수원에선 애초부터 더 뛸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여러 루머가 떠돌아 좋지 않았고 경기에 많이 뛰지 못했다는 부담도 컸어요.

아내와 많이 상의했죠. 심적으로 편한 데 가서 운동하고 싶다고.."
마침 황선홍 감독이 길을 열어줬다.

함께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어낸 동료이자 누구보다 자신을 잘 이해해줄 것 같았던 선배가 지휘봉을 잡고 있다면 왠지 가능성이 보일 것 같았다.

"수원에서 있었던 일을 후회하진 않아요.

하지만 그 팀은 날 믿고 기다리면서 쓸 수 없었답니다.

전술적으로 안 맞았던 부분도 있었고 내가 이해하지 못한 면도 있죠. 상승세를 탔던 때도 있었지만 출전 시간이 줄어드니까 보여줄 수가 없고..어쩌다 나갔을 땐 상황이 좋지 않을 때가 많았고 운도 없었고.."
올 시즌 중 수원을 만난다면 더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겠다고 했다.

다만 수원 서포터스 '그랑블루'에게 미안하고 고맙단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마음에 빚을 진 느낌도 있다고 했다.

그는 결국 (수원의) 제안을 거부했고 황선홍 감독과 손을 맞잡았다.

북한 대표팀 미드필더 안영학과 극적으로 트레이드된 것도 작용했지만 안정환에게 '황선홍 카드'는 각별했다.

"황선홍 감독은 내가 어떻게 축구를 하는지 아니까 배려를 해줘요.

강제로 끌고 가려 하진 않거든요"
안정환은 인터뷰 내내 '밑바닥부터 시작한다'는 말을 서너 번 되뇌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 토고전에서 골을 넣고 반짝하다 이후엔 무적(無籍) 선수가 됐던 시절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은퇴하고 나면 할 얘기가 많아요.

그 땐 다 털어놓을 수 있지만 지금은 좀.."
핌 베어벡 전 대표팀 감독과 좋지 않았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베어벡이 직접 안정환을 겨냥해 '무적 선수를 대표팀에 받을 순 없다'고 하던 때도 있었다.

안정환은 "베어벡 감독과는 '그런 저런 일'이 있었다"고만 했다.

그는 등번호 '8'을 달았다.

1998-2000년 부산에서 뛰던 시절 백넘버 그대로다.

아내 이혜원씨를 처음 만난 것도 그 번호를 달고 뛰던 때였다.

"아내가 그러더라구요.

많이들 기억하니까 그 번호가 좋겠다고.."
구단 스태프는 용병 번호를 뒤로 빼 안정환 몰래 8번을 넘겨줬다.

부담이 없게끔 빈 번호인 것처럼 신경도 썼다.

안정환은 잃어버린 부산의 축구 열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땐 정말 대단했어요.

아담한 구덕운동장이었는데 바로 옆에서 함성 소리가 들리고.."
부산 아이파크는 작년 두 부분에서 사실상 꼴찌를 했다.

성적도 그렇고 관중 동원도 그랬다.

"나 하나 왔다고 금세 달라질 것 같진 않아요.

부산 축구 팬들이 돌아왔구나 하는 건 느끼지 못해요.

이기는 것도 좋지만 예전처럼 열광적인 경기를 보여드리는 것, 그게 바로 팬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안정환은 어느덧 팀을 이끌어야 할 위치다.

'선수들 얼굴과 이름은 다 외우냐'고 묻자 "그걸 왜 모르느냐"며 웃는다.

하지만 아직 서먹서먹한 면도 있단다.

"고참들 어려워 하는거야 내가 막내일 때도 마찬가지였고..8년전엔 내가 따라가야 할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길을 만들어야 할 나이란 게 다르죠. 어렸을 때부터 좋은 형들이 많았는데 솔선수범해야 하겠구나, 이젠 돌려줘야겠구나란 생각이 자주 들어요"
하지만 자신 때문에 생기는 '팀내 위화감'이란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았다.

안정환은 일본에 전지훈련을 오던 날부터 여성 팬들을 몰고 다녔다.

구마모토 훈련장에도 어김없이 '안 사마'를 외치는 주부 팬들이 몰려든다.

숙소까지 따라와 사인을 받아가는 열성 팬도 꽤 눈에 띈다.

"위화감 때문에 스타가 없는 팀이 돼야 하는 건가요? 내가 어렸을 땐 당시 유명했던 (이)민성 형 만큼만 되자고 했죠. 스타덤이 없으면 후배들도 목표가 없지 않습니까?"
안정환은 K-리그에서 이제 다섯 시즌째를 보내게 된다.

유럽과 일본 리그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막상 K-리그에서 뛸 시간은 많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K-리그에서 많은 해를 보낸 것도 아니고"
새 시즌 목표를 물었지만 즉답이 돌아오진 않았다.

"황 감독님이 토종 두자릿수 골 얘기도 했지만 나 혼자 10골, 15골 넣고 팀이 꼴찌하면 무엇하겠습니까.

우선 팀이 이기는 경기에서 골을 넣는 게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엔 내 자존심이겠죠"
안정환은 부산이 약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정상에 섰을 때, 또 팀이 정상에 섰을 때 떠나가고 싶다고 했다.

부산에 뼈를 묻겠다는 말도 거기서 나왔다.

"내 이름을 막 알리기 시작했던 그 팀에서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무엇보다 간절하답니다.

여기서 받았던 사랑을 좋은 모습으로 다 돌려주고..그래야 떠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안정환은 다시 훈련장으로 향한다.

'반지의 제왕'이든, '테리우스'든 무슨 별명으로 불리든 좋다고 한다.

'8년 전 그 때 그 열광을 다시 느낄 수만 있다면'하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뛰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했다.

(구마모토연합뉴스) 옥 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