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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포럼] 동방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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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의 위상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탓이다.자금난에 처한 이들의 백기사는 미국의 기관투자가도,유럽의 투자은행도 아닌 아시아와 중동의 국부 펀드라는 점이 주목된다.중국투자공사는 모건스탠리 지분 9.9%를 50억달러에 사들였고 아부다비투자청은 씨티그룹 지분 4.9%를 75억달러에 인수했다.메릴린치는 지분 9.9%를 테마섹(싱가포르)에 50억달러에 넘긴 데 이어 한국투자공사(KIC) 미즈호금융그룹 등으로부터 60억달러를 유치했다.이 자금으로도 부족해 씨티그룹은 싱가포르투자청 등으로부터 145억달러를 투자받기로 하는 등 추가 수혈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월가 금융회사들의 바겐세일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부터 이례적이지만 주요 쇼핑객이 아시아인이라는 점도 과거 같으면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다.불과 10년 전만 해도 서방 자본의 상징이라 할 국제통화기금(IMF)이 외환 위기로 신음하던 아시아 국가들에 구제금융을 지원하고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턱없이 높은 대출 금리를 요구하면서 굴욕을 안겨 주었던 점을 되돌아보면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상황 변화이다.앞으로 아시아와 중동의 국부 펀드들이 주주 가치 실현을 명분삼아 공동 대응에 나서면서 월가의 경영진을 압박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제조업과는 달리 선진국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했던 금융 분야에서도 아시아 국가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 셈이다.동방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론 미국 경제가 침체 위기에 놓여 있는 만큼 무더기 파산 등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월가의 구원 투수로 등장한 국부 펀드들은 손실을 피할 도리가 없다.이런 위험을 알면서도 투자에 나선 의도는 단기적으로 고수익을 추구하면서 중·장기적으로 고급 투자 정보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해 자국 금융산업의 선진화를 앞당기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부 펀드는 1953년 쿠웨이트가 최초로 설립한 이후 30여개국이 40개가 넘는 펀드를 운용 중이다.자산 총액은 헤지펀드 총액의 두 배가 넘는 3조달러로 추산된다.3000억달러 이상의 국부 펀드를 보유 중인 사우디아라비아는 9000억달러 추가 조성 계획을 발표했고 일본 브라질 등도 신규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2010년에는 국부 펀드의 총 자산 가치가 전 세계 외환보유액을 초과하며 2015년에는 10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국부 펀드의 위력은 갈수록 커질 것이고 국부 펀드를 내세운 국가 간 금융 전쟁 역시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이런 와중에 KIC가 사상 최초로 대형 투자은행에 전략적 투자를 했다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테마섹은 지난 30년간 연평균 19%의 투자수익률을 실현한 반면 KIC는 3년 연속으로 적자를 면치 못했다.경쟁국 국부 펀드의 투자 활동을 철저히 분석한 뒤 KIC의 기능과 위상을 재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새 정부가 세계 금융시장의 흐름을 직시하고 우리 금융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명확한 비전을 조속히 마련하길 기대한다.

    최승욱 논설위원 sw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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