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날마다

한 움큼씩의 머리카락을 눈물처럼

쏟으며

힘겹게 밟아온 당신의 지난 세월을

덤성덤성 지워버렸다

자고 일어나 베개맡에 흩어진

아버지의 세월을 줍는 어머니는

그 중 몇 가닥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오래오래 내려다보곤 하였다

-김주대 '부부'전문



평생 반려한 남편이 몸져 누웠다.

함께 헤쳐온 생,그 끝자락이 희미하게 흔들린다.

머지않아 이별의 순간이 올 것이다.

만남은 헤어짐을 예비한다지만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다.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남편을 대책없이 지켜 보는 것,지켜보면서 먹고 자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아무일 없다는 듯 세상은 돌아간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베개맡에서 주워올린 머리카락을 오래오래 내려다보며 막막한 아픔을 삼킬 뿐이다.

노부부의 인연은 이렇게 극점을 향해 가고 있다.

시인은 제목 아래에 다음과 같은 글을 붙였다.

'병과의 싸움도 분명 삶의 일부다.

아버지는 투병생활을 하시면서 어머니와의 사랑을 완성시켜 나가는 것 같았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