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 전망깨고 막판 주고받기끝 극적타결

"우리도 깜짝 놀랐다."

국회 법사위 제1법안심사소위원장인 대통합민주신당 이상민 의원은 22일 소위에서 각 당 합의로 삼성비자금특검법을 처리한 이후 "이렇게 쉽게 처리될 줄 몰랐다"면서 짧은 소회를 피력했다.

지난 14~15일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등 3당과 한나라당이 각각 특검법을 제출한 이후 벌어진 지루한 공방전을 감안할 때 이날 법안처리는 전격적이라는 표현이 맞아떨어질 정도로 예상밖의 일이었다.

특히 특검법이 법사위에 상정된 것은 불과 하루 전인 21일이었고 23일 정기국회가 마감될 예정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특검법 처리는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실제로 전날 두 차례 소위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이날 오전 10시부터 개최된 3차 소위에서도 신당과 한나라당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공방만 계속했다.

신당은 "한나라당이 법안처리를 지연시키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전 회의과정을 언론에 공개했고, 한나라당도 공개 못할 이유가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이날 논의의 핵심은 법안에 특검 수사대상으로 `대선잔금'과 `당선축하금'을 명시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한나라당은 현재 대선잔금 및 당선축하금에 대한 의혹이 구체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만큼 이를 명문화하자고 요구했지만 신당은 대선잔금은 무소속 이회창 후보, 당선축하금은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한 정치적 성격이 짙어 수용하기 어렵다고 버텼다.

이 과정에서 거친 고성과 반말이 오가는 공방전이 벌어졌고, 한 의원은 분을 참지 못해 서류뭉치를 책상에 집어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신당이 한나라당 법안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하면서 미묘한 기류변화가 생겼다.

신당은 불법 경영권 승계의혹은 물론 고위권력층이 아닌 언론계, 학계에 대한 로비의혹까지 수사대상에 포함시켰지만 한나라당 주장대로 불법 비자금 조성 및 용처에 국한한 법안 내용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다만 한나라당 법안에는 애초부터 `대선잔금'이나 `당선축하금'는 용어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을 법안에 명시할 수 없다는 전제를 달았다.

신당은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나라당 법안을 그대로 받아들였으니 통과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압박했다.

한나라당 법사위원들은 자리를 피해 별도 회의를 열고 `대선잔금'이란 문구는 빼겠으니 `당선축하금 등'이라는 여섯 글자만 법안에 집어넣자고 역제의했다.

그러나 신당 의원들은 "도대체 한나라당이 제출한 법안에도 없던 `당선축하금'을 왜 집어넣겠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법안 처리를 지연하고자 하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신당이 양보한다면서 이 여섯 글자도 양보 못하느냐"며 "우리도 법안처리에 적극적이다.

왜 우리가 법안처리에 미온적이라고 몰아붙이느냐"고 격하게 대응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서로 양보하기로 했으니까 `당선축하금 등'도 집어넣고, 경영권 승계의혹도 집어넣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다.

신당에서 표결로 처리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 순간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신당 이상민 의원에게 다가가 무언가 귀엣말을 전했고, 이 의원은 낮 12시30분께 "30분간 양당 입장정리를 한 뒤 회의를 재개하겠다"고 정회를 선언했다.

주 의원은 "당선축하금이라는 말을 법안에 넣지 않고 제안설명 과정에서만 사용하면 우리도 수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이 의원은 전했다.

오후 1시에 회의가 재개됐지만 이 의원은 비공개회의가 필요하다며 취재진이 잠시만 자리를 비워줄 것을 요청했다.

이윽고 1시30분께 공개회의가 재개되자마자 일부 의원들은 "합의됐다"는 소식을 언론에 전했다.

이상민 의원은 언론에 소위 합의사항을 불러주고 의원들에게 "이견이 없느냐"고 확인한 뒤 의사봉을 세 번 두드려 소위를 마무리했다.

삼성비자금특검법이 소위를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