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채 < 문학평론가 >

대통령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5년마다 열리는 보통선거의 가장 큰 축제다.

한동안 잊혀졌던 얼굴들이 속속 귀환하고,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둘러싸고 만들어지는 익숙한 수사(修辭)들이 또다시 귀에 쟁쟁거린다.

이런 말잔치판 속에 있다 보니 정치하는 사람들이 좀 불쌍하게 느껴졌다.

불쌍하다고?그렇다.

보통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을 앞장서서 실행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팔자 때문이다.

첫째가 잘난 척하기.자화자찬만큼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도 찾기 힘들다.

잘난 사람 보는 것도 그리 편치는 않은데,잘난 사람이 잘난 척까지 하면 이런 꼴불견이 없다.

게다가 별로 잘나지도 않은 사람이 잘난 척을 하면 그건 정말 견디기 어렵다.

마음껏 잘난 척을 하라.친구는 사라져가고 추종자만이 남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구조적으로 잘난 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유권자 앞에서 자기가 능력 있는 사람임을 알려야 하고 또 증명해야 한다.

없는 치적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야 사기꾼이니 말할 것도 없지만,있는 치적을 강조하고 내세우는 것도 보기 좋은 것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 바쁜 세상에,유권자들이 자기 능력을 알아주기를 원하면서 능력이 없는 척 겸손을 차리는 입후보자의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제도적으로 잘난 척을 할 수밖에 없는 팔자,정치인들은 기구하다.

둘째는 위선을 떠는 일.이것 역시 사람들이 싫어하는 항목 중 최고 순위를 다툰다.

정치인들은 말끝마다 국민이라는 말을 주워섬긴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국민이 원한다면 등등은 그들의 언사 속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은 기분이 나쁠 때가 많다.

나는 당신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데 왜 자꾸 내 뜻이라고 하는가.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것 또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무기명 비밀투표를 바탕으로 삼는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은 득표율에 무관하게 전체를 대표한다.

그래서 후보자들은 모두 당선자처럼 전 국민을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거꾸로 자기 지지자의 이익만을 대표하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있다면 끔찍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말끝마다 국민을 앞세우는 그들의 말과 생각은 명백한 위선이되,말하자면 제도화된 위선이고,그런 틀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의 팔자,참 드세다.

게다가 정치인들은 일인칭 대명사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곤 하는 두 개의 어른 집단 중 하나다.

주어가 들어갈 자리에 자기 이름을 집어 넣는 말투는 대명사의 개념을 익히지 못한 유아들의 것이지만,어른들 중에도 이런 말투를 자주 사용하는 두 개의 집단이 있다.

혀 짧은 소리로 애교를 부리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그 하나고,정치인들이 다른 하나다.

대중 앞에 선 정치인들은 '제가'라고 해야 할 대목에서 어김없이 자기 이름을 크게 외친다.

'이 이명박이(이 이회창이,이 정동영이)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겠습니다.

' 이 점잖은 사람들이 지금 대중들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는 것인가.

스스로를 유아 취급함으로써 겸양지덕을 보이는 것인가.

자기 인품과 취향대로 살 수 없는 정치인들 팔자,참 험하다.

선거는 민주주의라는 제도 속에 감추어져 있는 불합리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제도다.

확인되지 않은 루머 하나,감춰진 스캔들 하나가 판 전체를 뒤흔들어 버릴 수 있다.

그러나 그 불합리성을 제거하려 하다가는 민주주의 자체가 망가져버릴 수도 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축제의 장이라면 그것은 순간적인 과잉과 무질서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이 축제판 곁다리에서 정치인들의 팔자타령을 대신 해봄으로써 변죽이나 울리고 있는 것인데,그래도 팔자타령을 극복해 낸 한국 근대화의 역사가 눈앞에 있으니,한국의 정치인들도 장차 그 모진 팔자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이 변죽 울리기를 마무리하자.북의 한복판을 덩덩 울리는 일이야 무서운 유권자들이 확실한 한 표로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