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등 대기업, OPIc 도입채비…취업전략 지각변동 예상

삼성그룹이 내년부터 신입사원 채용시험에 토익을 폐지하고 OPIc(Oral Proficiency Interview-computer)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구직시장에 '벙어리 영어' 퇴출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국내 최대 채용기업인 삼성그룹에서 OPIc을 도입할 경우 다른 대기업의 채용방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해서다.

OPIc은 '말하기'에 초점이 맞춰진 실전 영어테스트.'듣기'와 '읽기' 위주로 평가하는 토플과 토익에서 고득점을 받더라도 영어를 제대로 뻥끗하지 못하는 구직자를 가려내는 시험이다.

유창하지는 않더라도 명확하게 의사를 표현하는 능력을 원하는 기업들로선 OPIc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없다.

하지만 구직자에게는 영어회화 능력이 하루아침에 느는 것이 아닌 만큼 '취업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각종 취업카페에는 토익 위주로 취업 준비를 해온 구직자들이 전략을 수정할 계획이라는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해어지화'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구직자는 "다른 기업에도 OPIc 도입이 확산되는 게 제일 무섭다"고 토로했다. OPIc에 전념한다거나 제도 시행 전에 취업해야 한다는 구직자도 있었다. OPIc이 해외 어학연수를 더욱 부추긴다거나 OPIc도 일정한 패턴이 있어서 유형만 익히면 점수가 잘 나올 수 있다며 비판적인 의견도 있었다. 그럼에도 OPIc은 범 삼성그룹을 중심으로 꾸준히 확산될 태세다. 이미 지난해 말 CJ그룹과 신라호텔ㆍ오뚜기 등에서 OPIc을 영어 평가시험으로 도입했다. SK텔레콤 및 동부화재도 OPIc을 임직원 영어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올 1월에는 삼성그룹이 정기 어학능력검정시험으로 채택했다.

삼성그룹은 현재 해외파견 직원과 일부 임직원의 승진평가에 OPIc을 활용해 왔지만 앞으로는 모든 계열사의 임직원 승진평가에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현대나 SK 같은 다른 대기업들도 OPIc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크레듀 김영순 대표는 "세계적으로 언어평가가 듣기ㆍ읽기의 이해기능 중심에서 말하기ㆍ쓰기 등 표현기능 중심으로 발전해가고 있다"며 "OPIc은 영어로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논리적으로 표현하는가에 대한 평가까지 가능해 기업과 구직자 모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OPIc 뭐길래?

OPIc은 미국의 언어능력평가기관인 ACTFL(전미외국어교육협회)과 국내 e러닝 업체인 크레듀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공동 개발한 영어 말하기 능력 평가시험이다.

사전 설문을 통해 개인이 원하는 말하기 주제를 선택하고 본인의 능력에 맞춰 난이도를 선택할 수 있는 '응시자 맞춤형'으로 구성돼 있다.

40분 동안 12∼15개 질문에 답하게 되며 한 문제당 답변 시간은 응시자 개인이 조절할 수 있다.

평가는 짧고 불완전한 문장을 구성하는 노비스(Novice) 3단계,머뭇거리고 문법적 실수가 있지만 자신 있게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터미디어트(Intermediate) 3단계,모든 시제표현을 사용해 일관되고 완벽하게 진술이 가능한 어드밴스드(Advanced) 등 총 7단계로 구성된다.

문법,단어,유창함,발음은 물론 다양한 상황에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시험하는 방식이다.

"의미전달 단위의 길이와 구성 능력,주제표현 능력,의사전달 능력 등을 평가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말하기 실력 측정이 가능하다"는 게 크레듀 측 설명이다.

이를 위해 OPIc은 평가 전 서베이를 통해 응시자의 직업,경험,관심 분야,선호도 등을 조사해 각자에게 맞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도입,문제은행식 평가의 한계를 극복했다.

각 문항의 답변에 시간 제한을 두지 않아 주어진 시간 내에 답변해야 한다는 강박감도 덜어줬다.

또 응시자가 본인의 말하기 정도를 선택할 수 있어 질문의 난이도를 조정하고,시험 중간에 다시 한번 난이도를 변경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OPIc은 공인된 평가자에 의해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 점이 최대 강점이다.

미국의 중ㆍ고등교사 및 대학교수 언어 전공자 중 ACTFL이 엄정한 인증과정을 거쳐 공인평가자를 선발한다.

◆어떻게 준비하지?

크레듀 관계자는 OPIc에 대비,우선 자신의 등급을 스스로 진단해보고 실력에 맞춰 시험을 공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초급 레벨에서는 '단어만 암기하는' 습관을 버릴 것을 주문한다.

스피킹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어를 소리내서 읽는 연습도 바람직한 방법이다.

배운 문장은 단어 하나라도 다른 단어를 대입해 말해보는 등 응용을 해 보는 게 중요하다.

'시제'를 맞추는 노력도 해야 한다.

말하고자 하는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그만큼 대화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평가자들은 시제에 맞게 말하는 것을 어순에 맞춰 말하는 것보다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시험과 관련된 다양한 상황을 익혀둬야 한다.

특히 답변을 'Yes' 'No'만으로 간단하게 끝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질문이 'Are you a student?'라면 'Yes'나 'Yes,I am'보다는 'Yes,I am majoring in marketing'처럼 구체적으로 답하는 게 유리하다.

자신에 대한 정보를 좀 더 확실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태도는 좋은 평가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

초보자 딱지를 떼기 위해선 문장과 문장이 연결되도록 연습하는 것도 중요하다.

질문을 잘 인식하고 문맥에 맞는 문장을 이어가면 플러스가 된다.

이와 함께 많이 사용하는 구문은 미리 정리해 입에 익혀놓는 것이 좋다.

중급 레벨에서는 스터디 파트너를 구해서 영어로 서로 묻고 대답하는 연습을 하면서 순발력 있게 영어로 답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출제 확률이 높은 자기소개나 직업,가족 등에 대한 답변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은 기본이다.

연결어를 사용해서 문장들을 붙이는 연습을 하면 보다 높은 단계로 평가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과거 시제에서 시작해 다양한 시제를 구사하고 과거와 현재완료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면 중급 이상의 레벨 평가도 받을 수 있다.

상급 레벨에서는 미국 토크쇼를 시청하면 큰 도움이 된다.

일상적인 일들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개씩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는 연습을 생활화하는 것도 좋다.

정기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녹음해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객관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평가하고 부족한 부분을 고쳐나갈 수 있어서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