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자신 명의의 차명계좌로 삼성이 비자금 일부를 관리해왔다고 주장한 데 대해 "해당 계좌의 돈은 삼성과 관계없는 개인돈"이라고 29일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 "내부 조사 결과 김 변호사 차명계좌에 50억원이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 돈은 삼성그룹의 회사 자금이나 오너 일가의 돈이 아니라 제 3자의 개인 돈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 변호사가 삼성에 재직할 당시 동료에게 차명계좌를 빌려주고, 이 동료는 이 계좌로 한 재력가의 돈을 위탁받아 관리해왔다"며 "이 계좌는 도용된 것이 아니라 김 변호사와 이 동료의 합의 아래 개설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재무팀 임원으로 근무중인 이 동료의 신분을 공개할 용의도 있으나 그에 따른 법률적인 문제를 검토중"이라며 "이 돈의 실제 주인이나 성격은 앞으로 명백히 가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삼성은 김 변호사가 주도한 기자회견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본 뒤 법적 대응 여부를 결정할 것이며 김 변호사로부터 차명계좌를 빌려 운용한 임원을 내부 윤리규정에 따라 처벌할 것인지 검토중이라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삼성측은 "김 변호사가 삼성에 7년 동안 근무하면서 연봉, 성과급, 스톡옵션 등으로 102억원을 받았고, 퇴직한 뒤에는 올해 9월까지 3년 동안 퇴직 임원 예우 차원에서 고문료 명목으로 매달 2천200만원씩 지급받는 등 적지 않은 예우를 받았다"며 "퇴사 후 전직장을 음해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이날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용철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이 자신도 모르게 개설된 A은행의 계좌에 50억원대로 추정되는 현금과 주식이 들어있었으며 이는 삼성그룹이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이라고 양심선언을 해 왔다"고 밝혔다.

사제단은 "같은 은행에 본인도 모르는 또다른 계좌 2개가 더 개설돼 있었다"며 이 계좌들은 `보안계좌'로 분류돼 계좌번호 조회가 불가능하거나 계좌의 존재여부도 확인되지 않아 비자금 관리용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무팀은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내 핵심 조직 중 하나로, 팀장을 지낸 김 변호사가 삼성의 비자금 운용을 주장함에 따라 진위 여부가 주목된다.

김 변호사는 검사 출신으로 지난 97년부터 2004년까지 삼성구조조정본부에서 재무팀 상무, 법률팀장(전무급) 등을 지냈으며 퇴사 후에는 최근까지 법무법인 '서정'에서 변호사로 근무해왔다.

김 변호사는 '서정'에서 퇴사한 뒤 이달 초 이 법무법인을 상대로 출자지분반환 청구소송을 내면서 "모일간지에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배정 사건을 삼성 비서실이 개입했다'는 기사가 난 후 삼성이 이 기사의 배후로 자신을 지목해 퇴사 압력을 행사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서울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