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에 개봉된 영화 '바람의 파이터'가 추석연휴에 방송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바람의 파이터'는 방학기씨의 원작 만화를 양윤호 감독이 영화화한 양동근, 히라야마 아야, 가토 마사야, 정태우, 정두홍 주연의 작품이다.

그러나 한국인으로 일본 무도계를 평정했던 최배달(본명 최영의)의 무용담을 깊은 사색을 곁들여 극화했던 원작 만화와 달리 이 영화에선 영혼의 울림은 없고 싸움꾼의 승부욕만 부각됐다.

눈요깃거리 에피소드들이 지나치게 많고 구성은 산만하다.

실존 인물을 그린 전기영화가 가져야 할 확고한 주제가 없는 탓이다.

뛰어난 전기영화로 꼽히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인간의 광기와 열정을 부각키셨고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의 '간디'는 소박한 삶과 숭고한 정신을 포착했으며 '뷰티풀 마인드'에선 고독한 천재의 불우한 삶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준다.

원작대로라면 최배달은 높은 도덕성을 갖췄고 자신의 한계에 끝없이 도전하는 무도인이다.

하지만 영화에선 그가 혹독한 수련을 쌓아 무도인으로 거듭나는 동기와 목표가 부각되지 않았다.

가혹한 차별에서 비롯된 반일감정의 발로인지, 싸움꾼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투쟁의 결과인지, 무도계를 제패하려는 성취 동기 때문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잡으려는 과잉 의욕 때문이다.

선택과 집중의 실패로 영화는 거의 싸움장면들로 채워졌다.

극의 절반은 일본 저잣거리의 저급한 싸움꾼들 이야기이며 나머지 절반은 짧은 기간의 수련을 마친 후 '무도장 깨기'에 나서는 내용이다.

무도인으로서 정신적 수양을 쌓아 올리는 과정이나 대결에 임하는 주인공의 내면에 대한 응시는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배달이 피살자의 가족들에게 용서받기 위해 참회하는 모습에서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것들로 인해 영화 '바람의 파이터'는 최배달을 무도 영웅이 아니라 저잣거리 싸운꾼으로 관객들에게 짙은 인상을 풍기며 아쉬움을 남긴 영화이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