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어려운 수학문제로 골머리를 앓아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 때는 문제집 뒤쪽에 있는 해답을 보면서 역으로 풀어보면 실타래처럼 뒤엉킨 문제도 술술 풀릴 때가 있다.

신정아씨 사태가 그런 경우다.

신씨는 가짜박사 논란의 와중에도 동국대 측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직을 꿰차는 놀라운 수완을 발휘하는 등 '미스터리의 여인'으로 기억될 뻔 했다.

퍼즐 맞추기는 그러나 의외의 곳에서 실마리가 잡혔다.

PC상으로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은 삭제명령으로 지워도 디스크 포맷 이후 덮어쓰기를 하거나 데이터 삭제프로그램을 쓰지 않는 한 얼마든지 복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게 화근이었다.

캔자스대나 예일대를 제대로만 다녔어도 이런 '상식' 정도는 알 수 있었을 텐데 스스로 발목을 잡은 셈이다.

검찰수사도 모처럼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신씨가 변양균 청와대 전 정책실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추 윤곽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검찰은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였다고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다.

이 정도 관계만으로도 변 전 실장은 지인들에게 "아끼는 예일대 후배"라고 신씨를 소개했을 테고,독실한 불교신자에다 현 정권 실세인 변 전 실장의 부탁을 동국대 고위층이 외면했을 리 만무하다.

학력위조 은폐 의혹이 남녀간 애정문제와 맞물리자 호사가들은 당장 7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로비스트 린다김'을 떠올린다.

미모와 뛰어난 화술,러브레터로 마음을 사로잡은 정권 실세를 자신의 출세와 치부에 적극 활용했다는 점에서 두 여인은 분명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들과 정분을 나눴던 남자들은 성향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린다김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자백한 이모 전 국방부 장관은 '순정파'였다.

김씨는 이런 이씨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요즘처럼 인스턴트 사랑이 판치는 세상에 아직 이런 분이 다 있구나 싶어 내심 놀랐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변 전 실장은 실속파에 가깝다는 평이다. 그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기획예산처의 직원들은 "남녀 사이를 누가 알겠느냐"면서도 꽤 의외라는 반응이다.

변 전 실장은 사무관 시절부터 재야 인사를 만나고 다닐 정도로 정치적 야심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흠 잡힐 행동은 하지 않아 '교과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인생의 최고 절정기에서 치정 문제에 휘말렸으니 의문부호를 달 만하다.

'깃털-몸통론'이나 '꼬리자르기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법조계의 관심은 변 전 실장이 예술감독 선임 등에 외압을 행사해 직권남용죄가 성립되는지 여부 등이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은 여기서 그치질 않는다.

검찰이 '이불 속 일'이라며 둘의 내밀한 관계에 침묵할 경우 진짜 소설 같은 얘기들이 홍수처럼 쏟아질 게 뻔하다.

벌써부터 신씨가 거주한 오피스텔과 변 전 실장이 투숙했다는 호텔이 지근거리에 있다는 등 온통 애정행각에 초점이 맞춰지는 분위기다.

아직 둘이 주고받은 이메일은 대부분 공개되지 않았다.

의혹 확대와 비례해 커지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검찰의 신속하고도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김병일 사회부 차장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