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국정운영 시스템 전반에 빨간 불이 켜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11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하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할 정도로 청와대의 위기관리 능력에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정윤재 전 비서관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질 당시 초기 대응에 문제가 많았다는 점은 국정상황실과 관련업무를 담당하는 민정기능이 사실상 와해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판단과 지시를 '쳐다보기만 하는' 현재의 참모 조직부터 일신해야 한다는 비판도 청와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예산.경제정책 체계적 관리 빨간불

청와대는 다음달 2일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을 불과 2주 앞두고 청와대 정책실장의 공백이라는 상황을 맞게 됐다.

당장 방북 수행단에 포함됐던 변 전 실장이 제외되면서 이를 대신할 인물을 찾아야 할 상황이다.

이뿐만 아니라 경제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절하면서 금융·부동산 시장의 동향파악과 상황을 관리해야 할 청와대 실무 총책임자가 사라지면서 예산과 경제정책 전반의 체계적인 관리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청와대는 일단 문재인 비서실장 체제로 사태를 수습하면서 정책실 선임수석인 김대유 경제정책 수석을 통해 정책업무를 관리대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누가 후임으로 임명되더라도 대통령의 실질적인 임기가 불과 3개월여밖에 남지않은 상황이어서 업무 인수인계조차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내부 시스템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면서도 "정책실장의 급작스런 공백이 공직사회의 이완이나 부처간 정책 혼선을 불러일으킬지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정라인 책임론 대두

이번 사건으로 국정 전반을 관리하는 청와대 관련조직,특히 민정수석실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일고 있다.

국정상황 전반을 관리하는 조직의 무사안일과 안이한 판단이 사태를 조기 수습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면서 노 대통령의 레임덕을 불러오는 데 결정적인 노릇을 했다는 분석이다.

정 전 비서관에 이어 터진 변 전 실장 의혹에 대해 노 대통령이 최근까지 "깜도 안되는 의혹…소설 같은 얘기" 등으로 치부할 정도로 사실확인과 내부조사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전해철 민정수석은 변 전 실장의 거짓말에 대해 "변 실장의 해명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인 사정에 따른 것으로 조사하기가 어렵다"는 말로 수사권이 없다는 능력의 한계와 무능력을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가 변 전 실장의 거짓말을 국민에게 알리도록 한 셈이다.

정부 부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이 신문에서 첩보를 채집한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로 자체 정보수집 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면서 "그 정도 수준이라면 제대로 된 정책감시는 어렵지 않겠냐"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의 판단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대화나 논의가 사라지고 있는 청와대 분위기를 원인으로 지적하고있다.

특히 중요 정무적 판단의 경우 대통령의 의중 맞추기에만 급급,현실적인 논의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