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 되면 탤런트 이의정 씨(33)가 데뷔한 지 20년째다. 벌써 서른셋이라고 해야 할지, 아직도 서른셋이라고 해야 할지 그녀는 유난히 많은 일들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브라운관을 통해 연기 잘하는 아역 탤런트에서 발랄하고 톡톡 튀는 성인 연기자로 변모해 온 그녀의 모습은 대중에게 친숙하다. 그러던 중 작년에는 뇌종양이 의심된다는 소식을 전하며 여러 사람들의 가슴을 애태우기도 했다. ‘스트레스성 염증’이라는 최종 진단을 받고 치료를 마친 후 이제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이의정 씨. 그녀가 ‘아미까(www.amicca.co.kr)’라는 온라인 패션 쇼핑몰의 대표를 맡아 8월 31일 오픈을 단행했다.

쇼핑몰의 이름인 아미까는 여자 친구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를 변형한 이름이다. 아미까 만의 독특한 콘셉트에 중독된 친구들을 만들겠다는 그녀의 바람이 담겨 있다. 여성 의류와 구두, 가방 등을 구매하는 기존 쇼핑몰의 개념에서 벗어나 유행을 창조하는 문화 콘텐츠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패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동영상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들이 대기 중이고 아미까 만의 마일리지인 ‘오렌지’를 통해 이용자들의 구매와 참여를 독려하려고 한다.


영화 ‘팩토리 걸’서 분위기 따와

아미까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영화 ‘팩토리 걸’에서 따왔다. ‘팩토리 걸’은 팝 아트의 선두주자인 앤디 워홀에게 영감을 준 모델 에디 세즈윅의 일생을 다룬 영화다. ‘팩토리’는 앤디 워홀의 작품 활동이 이뤄진 작업실이었고, 당시 유행의 최첨단을 걸었던 에디 세즈윅이 머무르던 공간이기도 하다. 아미까는 그녀에게 있어서 팩토리라고 표현할 수 있는 쇼핑몰이다. 그녀는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경쾌한 팝 아트 이미지와 에디 세즈윅이 활동했던 1960년대적인 분위기를 담은 쇼핑몰을 추구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의정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대로일 거예요. 제가 갑자기 섹시하거나 얌전한 패션을 선보일 수는 없잖아요. 귀엽고 소년 같은 매력이나 유행에 앞서가는 느낌을 주는 패션을 볼 수 있고, 즐길 거리가 많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쇼핑몰입니다.”

일단 콘셉트는 그럴 듯하지만 겉멋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이의정이라는 사람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사업 도전기는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많아 무언가 만들기를 좋아하고 늘 남을 꾸며주기 좋아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연예인을 오래 했으니까 남이 입혀 주는 옷, 꾸며 주는 화장을 실컷 입고 또 하고 살아왔지요. 그래서인지 일할 때 외에는 트레이닝복 같은 편한 옷으로 지내요. 나를 예쁘게 하는 데는 관심이 없지만 남의 스타일을 잡아주는 데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에게 자신 있게 패션 제안을 할 수 있는 감각은 인정하더라도 사업은 또 다른 재능과 노력이 필요할 터다. 알고 보니 사업은 그녀의 집안 내력이다. 일찍이 아버지는 화장품 제조회사를 경영하는 사업가이고, 어머니는 ‘엘모너(www.almoner.co.kr)’라는 주얼리 쇼핑몰을 운영한다. 한때 엘모너는 이의정의 주얼리 쇼핑몰로 유명세를 탄 적이 있다.

“아버지는 사업 수완이 좋다기보다 기술력으로 승부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려고 하는 분이에요. 이익을 내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라고 할 수 있죠. 오히려 어머니가 앞뒤 계산이 정확한 사업가예요. 두 분 다 제 사업에는 특별한 도움을 주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그냥 지켜봐 주십니다.”

아미까는 그녀에게 첫 사업이 아니다. 5년 전쯤 주얼리 유통에 손을 대서 쓴맛을 봤다. 엄청난 돈을 손해 본 것은 물론이요,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좌절감이 컸다. 오죽하면 그녀의 어머니는 사업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가 누적돼 뇌질환이 온 것이라고 했을까.

“초창기에는 사업이 아주 잘됐어요. 너무 쉽게 되는 것 같으니까 함께했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자 초심을 잃어버리더라고요. 저에게는 정말 큰 시련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나온 날이 창피하지 않고 이제는 혼자 남겨진다 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만큼 좋은 사람들과 다시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때의 경험은 그녀에게 많은 이득을 남겼다. 그녀는 매입, 발주, 배송, 세금 처리, 경영 노하우, 직원 관리 등 사업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훤히 보인다고 한다. 인건비는 어떻게 처리하고, 유지비는 어떻게 줄여갈지 설명하는 그녀의 모습은 웬만한 기업체 대표에 비해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그녀처럼 쇼핑몰을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신경 써야 할 부분으로는 시장 조사를 들었다. 직접 돌아다니며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먼저라는 것이다.

“마케팅보다 품질이 최우선입니다. 스타라는 점을 내세워 잠깐 손님이 몰려들게 할 수 있겠죠. 마케팅에만 의존하면 딱 거기까지가 한계입니다. 물건을 받았을 때 소재가 좋고 잘 만든 제품이라는 인상을 주어야 승부가 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그녀는 우선 허황된 꿈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이왕 시작한 사업이 잘 돼야 하겠지만, 안 될 경우에 대해서도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손해가 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해야 합니다. 예비 자금도 있어야 하지요. 곧 벌겠지, 대박이 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손을 대면 안 됩니다. 잘 안 풀릴 때를 대비한 대책을 반드시 세워두어야 합니다.”

눈에 띄는 콘셉트, 품질에 대한 원칙, 사업가다운 자세를 가지고 있는 이의정 씨의 아미까가 오래가는 쇼핑몰로 진정한 성공을 이룰지 기대된다. 그녀의 성공을 바라는 이는 기획, 업체 선정, 마케팅 등 쇼핑몰 전반에 노력을 쏟아 부은 이의정 씨 자신일 것이다. 그녀는 쇼핑몰이 제 자리를 잡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픈 사람들을 돕는 일도 계획하고 있다.


‘막연한 대박 기대감 버려’

“아프고 나서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어요. 생사가 오고 가는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느끼는 미묘한 감정이 있습니다. 병원에 있을 때 보았던 뇌종양에 걸린 아이들을 돕고 싶습니다. 약값과 수술비가 얼마나 많이 드는지 몰라요. 아미까에서 경매 등의 이벤트를 벌여 수익금으로 좋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현재 그녀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준비 중이다. 또한 출연 의뢰가 들어온 몇 개의 대본을 검토 중이고, 직접 기획에 참여하는 쇼 프로그램도 있다. 한 번 겪기도 힘들었을 많은 일들을 잘 이겨내고 사업과 연예 양쪽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그녀의 모습이 건강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김희연 객원기자 foolf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