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004940] 대주주인 론스타가 3일 영국계 은행인 HSBC에 외환은행을 매각하기로 합의했지만 금융감독 당국의 `법원 판결 전 매각 불가'라는 단호한 입장때문에 그 뜻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론스타와 외환은행 인수 자격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HSBC가 금융 당국을 떠보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론스타와 HSBC가 매각 시한을 내년 4월 말까지로 잡은 것은 현재 진행 중인 론스타에 대한 외환은행 대주주 적격성 심사와 2003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 등에 대한 법원 판결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와 법원 1심 판결이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도 론스타로서는 외환은행 매각의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 금감위 "판결전 외환銀 매각 승인 불가" = 금융감독위원회는 이날 HSCB가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 지분 51.02%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는 발표 직후 언론 브리핑을 통해 "현재 외환은행 매각과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재판과 관련한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HSBC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검토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HSBC는 발표 직전에 금융감독 당국에 그 내용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위는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싼 논란이 국내외에서 계속 일고 론스타와 HSBC가 협상을 공개하며 금융 당국을 압박하자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공식 입장을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론스타의 외환은행에 매각 움직임에 대해 법원 판결 전에 승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검찰이 작년 말에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불법으로 헐값으로 매각됐다며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등 관련자를 사법 처리하고 감사원이 3월에 검찰과 같은 내용의 최종 감사 결과를 발표해 론스타의 2003년 외환은행 인수를 무효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을 때 금감위는 법원의 최종 판결 이후에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법원에서 외환은행 매각의 불법성 여부를 둘러싸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금감위가 이런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론스타와 HSBC가 외환은행 매각에 합의했지만 실제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론스타 대주주 적격성 심사.법원 1심 판결이 관건 = 그렇지만 론스타와 HSBC가 합의 효력이 발휘되는 거래 시한을 둔 것은 여러 가지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양측은 HSBC가 외환은행 주식 취득 승인을 신청서를 내년 1월31일까지 금감위에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 론스타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내년 4월30일까지 외환은행 인수가 완료되지 않으면 일방에 의한 계약 해지가 가능하도록 했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적격성에 대한 정기 심사를 벌이고 있다.

이를 위해 금감원은 7월11일 론스타로부터 동일인(본인과 특수관계인)과 자산.자본 현황 등에 관한 자료를 제출받았다.

금감원은 론스타가 세계 각지에 투자하고 있는 사모펀드인 점을 감안해 자료를 받은 직후 미국을 비롯한 해외 금융 당국에 론스타 자료의 사실 여부에 대한 확인을 요청하고 현재 회신을 기다리고 있다.

종전에는 론스타 제출 자료에 의존해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벌였지만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을 둘러싼 논란이 일자 처음으로 해외 금융 당국의 확인 절차를 거치는 등 적극적인 심사를 벌이고 있다.

이번 심사의 관건은 론스타가 비금융 주력자(산업자본)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은행법상 동일인 가운데 비금융 회사의 자본 총액이 총 자본 총액의 25% 이상이거나 비금융 회사의 자산 총액이 2조원 이상이면 은행을 소유할 수 없는 비금융 주력자에 해당한다.

그동안 경제개혁연대와 참여연대, 정치권 일각에서는 론스타 펀드에 동일인의 범주에 있는 6개의 펀드가 있고 이들 펀드의 초기 투자액만 13조원을 넘는데다 회사 인수.합병(M&A), 부동산 관련 투자 등도 하고 있어 비금융 회사의 자산총액이 2조원을 넘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론스타의 국내외 투자 현황 등에 대한 제출 자료를 토대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벌여 상당 부분 진척이 되고 있다"며 "시기를 단정할 수 없지만 해외 금융 당국에 요청한 확인 자료가 오는 데로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9월, 늦어도 10월이나 11월에는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에 대한 결론이 날 것으로 관측된다.

만일 론스타가 비금융 주력자에 해당하면 외환은행 지분 51.02% 가운데 4% 초과분은 의결권이 제한되고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10%까지는 보유할 수 있으나 나머지는 6개월 안에 팔아야 한다.

이 경우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HSBC에 자신들의 뜻대로 팔 수 있게 된다.

반면 론스타가 대주주 적격성을 인정받으면 애초부터 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자격이 없었다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내년 초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도 론스타와 HSBC는 감안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론스타의 2003년 외환은행 인수에 법적 하자가 없다는 판결이 내릴 경우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할 명분이 생기고 금감위로서는 매각 승인을 마냥 미룰 수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반대로 법원이 불법성을 인정하고 피고인들이 항소를 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될 경우 금감위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직권 취소해야 하고 론스타는 외환은행 보유 지분을 팔아야 한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외환카드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주식매수청구권 발생 등에 따른 손실을 우려해 허위 감자 계획을 유포시켰다는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의 재판도 마찬가지다.

두 사건의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론스타로서는 외환은행을 매각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물론 법원 판결이 론스타와 HSBC가 합의한 매각 시한보다 늦어지거나 검찰이 패소해 항소하고 금감위가 이를 이유로 승인을 미룰 경우 양측의 합의는 무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이 없다는 심사 결과가 나오거나 법원 판결에서 론스타의 불법성이 인정되면 금감위는 강제 매각 명령을 내리게 된다"며 "이 경우 매각 대상을 지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론스타가 이런 점도 고려해 HSBC와 매각 시한을 정한 협상을 타결지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kms123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