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龜生 <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 부원장·역사학 >

정당은 정책이라는 상품을 만들어 유권자라는 구매자들에게 파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잘 팔리는 정책을 만드는 정당은 집권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즐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정당은 퇴출이라는 비극적 결말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근대적인 정당제도를 창조해낸 영국의 정치사를 살펴보아도 이 같은 예는 많다.

영국의 정당제도는 17세기 토리당과 휘그당의 전통 속에서 출발해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이 정치를 함께 주도하는 양당제도로 발전했다.

토리당의 맥을 이어받고 있는 정당은 보수당이지만 휘그당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은 정당은 원래 노동당이 아니라 자유당이었다.

자유당은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보수당과 번갈아 집권한 수권정당이었을 뿐 아니라 건강보험,실업보험,노령연금 등의 사회복지제도를 시행함으로써 영국이 장차 복지국가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던 자유당이 1920년대 노동당에 자리를 내주고 급격하게 몰락했다.

자유당 몰락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참정권 확대로 인해 19세기 후반 이후 빠르게 늘어난 노동계급 유권자들과,1929년 남성과 똑같이 참정권을 가지게 된 여성 유권자들이 요구하는 정책을 생산하는 데 미흡했던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노동당은 1970년대 들어 과도한 재정지출,만성적인 노사분규와 고임금,저축과 투자의욕의 상실 등 이른바 '영국병'을 키운 주범으로 인식되면서 위기를 맞게 됐다.

1979년 보수당이 집권해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대처 수상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노사분규를 평정하고 시장 위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경제회복에 성공하면서 보수당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됐다.

위기의 노동당을 벼랑 끝에서 구출한 사람은 얼마 전 수상 자리에서 물러난 토니 블레어였다.

1994년 노동당 당수로 선출된 블레어는 곧바로 '생산수단의 공유(共有)를 추구한다'는 오래된 당헌(黨憲)을 폐기하고 시장경제에 입각한 경영주의를 선언하면서 노동조합의 활동을 제한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노동당에 대한 노동조합의 영향력 행사를 제도적으로 축소시켰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블레어의 '신노동당'은 노동당의 창당원칙을 저버리고 자본주의라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먹은 일종의 배신행위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7년 노동당이 무려 18년 만에 재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블레어의 새로운 정책이 유권자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영국 정당사가 보여주는 자유당과 노동당의 사례는 시시때때로 변하는 환경 속에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정책을 적시에 생산하는 정당은 성공하고 그렇지 않은 정당은 몰락한다는 점이다.

우리 정당들의 현재 모습을 한번 살펴보자.한나라당은 열띤 경선을 무사히 마무리짓고 대통령 후보를 결정했다.

경선과정에서 주요 후보들의 도덕성과 리더십이 집중적인 검증을 받았으나 정책 검증은 미흡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본선에선 후보들의 도덕성이 또한번 이슈가 되겠지만 한나라당 경선에서 나타난 유권자들의 기대를 볼 때 국가경제 회복에 대한 비전과 정책적 묘안이 관건(關鍵)이 될 전망이다.

참여정부를 출범시킨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얼마 전 공식적인 해체절차를 거쳐 민주신당에 흡수되는 수순을 밟았다.

바닥을 치고 있는 지지율을 감안할 때 열린우리당 간판으로는 아무리 그럴 듯한 정책을 내 놓아도 국민의 관심을 끌기 힘들 것이라는 자체 진단에서 비롯된 듯하다.

어쨌건 민주신당은 과거의 열린우리당과 차별화된 정책을 생산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로 열린우리당'이라는 세간의 비판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색깔과 노선이 다른 후보들이 벌이는 당내 경선과정을 치르기도 힘겨운데 한나라당 후보와 겨룰 제대로 된 정책 생산이 가능할지 우려된다.

또 국민들 사이에는 대북 화해정책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북한의 핵무기 보유 등 달라진 대북현실을 감안해 추진 방법상의 변화를 기대하는 여론이 많이 있다.

이러한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 국민통합적인 대북 화해정책을 모색해 국민의 지지를 올리려 하는 것이 정당의 본질적 모습이고 여기에서 한나라당,민주신당,민주노동당,민주당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