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와 아프가니스탄 반군세력인 탈레반이 28일 한국인 인질 전원 석방에 전격 합의했다.

피랍 41일 째에 들어온 반가운 소식이다.

일각에선 이슬람 라마단 기간(이슬람 금식월)이 시작되는 10월 이전이나 돼서야 석방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았으나 이 처럼 조기 석방으로 가닥을 잡은 데는 우리 정부의 집요한 협상 노력과 미국.아프간 등 우방국의 지원, 이슬람권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비난 여론 등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탈레반이 당초 내세웠던 인질-탈레반 수감자 맞교환 조건을 철회한 것이 이번 인질 석방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러면 탈레반은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석방 합의 조건은 ▲아프간 파견 한국군의 연내 전원 철수 ▲아프간내 한국 민간인 8월안 전원 철수 ▲한국의 기독교 선교단 아프간 입국 금지 등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인 인질들이 아프간을 떠날 때까지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약속도 포함됐다.

우리로서는 이미 시행에 들어갔거나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들이다.

한국군 연내 철수는 인질 사태 초기 단계에서 우리 정부가 제시한 카드이다.

이 같은 합의 내용에 비춰 탈레반은 무엇보다 `명분'을 중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단 탈레반 수감자 석방의 경우 미국과 아프간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있고 실질적으로 한국 정부의 능력 밖이란 점이 고려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핵심요구가 사실상 좌절된 만큼 탈레반으로선 차선책을 택한 셈이다.

한국 정부와 탈레반 간 협상 과정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 지 현재로선 정확한 파악이 어렵지만 한국 정부가 `다른 카드'를 제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탈레반측이 공개한 한국군 연내 전원 철수와 한국 민간인 8월 내 전원 철수 등 외에도 탈레반에 대한 금전적 대가와 아프간 정부에 대한 공적지원자금(ODA) 약속 등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한편 탈레반으로선 인질들을 마냥 억류하기에 현실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대규모 인질을 관리하는 데 따른 어려움은 차치하고라도 이슬람권을 포함한 국제 사회의 강력한 성토 분위기도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슬람 율법상 여성 인질 억류를 지속하기 어려운 사정도 깔려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가 석방 교섭의 중재자로 적극 나선 데 이어 같은 이슬람권인 인도네시아 대표가 협상에 개입하는 등 이슬람권의 지원 사격도 든든한 뒷힘이 됐다.

미국과 아프간 정부의 강온 전략도 주효한 것으로 평가된다.

테러 세력과의 `비타협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이른바 `창의적 외교'로 물밑 교섭을 벌인 흔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홍콩 일간지 아시아 타임스는 최근 미국과 아프간 정부, 탈레반이 파키스탄에서 평화협상을 벌이고 있다면서, 이는 미국이 추진하는 아프간 경유 석유-가스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와 연관성이 있다고 협상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물론 미국과 아프간 정부는 `군사 옵션'을 넣어두고 탈레반 거점에 대해 끊임없이 압박을 가하는 강경 전략도 병행했다.

다만 탈레반측은 인질들을 일괄 석방하는 대신 단계적으로 풀어주는 방안을 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탈레반 대표단인 물라 나스룰라는 연합뉴스와의 간접 통화에서 "한번에 모두 석방하기에는 (인질들이 분산돼 있어)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3-4명씩 순차적으로 석방할 것"이라며 "하루 안에 모두 석방은 못할 것이고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분산된 인질 석방이 일시에 이뤄지기 어렵다는 현실 외에도 한국 측의 약속 이행을 지켜보면서 단계적으로 석방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는 `살라미 전술'을 구사하겠다는 얘기다.

이밖에 탈레반으로서는 이번 인질 사태 과정에서 능수능란한 언론 플레이 등을 통해 탈레반의 존재와 실체를 외부에 충분히 부각시킴으로써 이미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내부 평가를 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연합뉴스) hj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