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참의원 선거엔 큰 영향이 없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국민 여론도 가라앉을 테고. 막상 투표소에 가면 결국 자민당을 찍게 될 겁니다." 연금 기록 부실 문제로 일본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던 지난 5월 말.집권 자민당의 한 중진 의원은 TV 방송에서 연금 문제가 참의원 선거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렇게 태연히 전망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자민당은 참혹하게 패했다.

121석을 놓고 겨룬 선거에서 자민당은 겨우 37석을 건졌다.

60석을 얻은 야당인 민주당에 원내 제1당 자리를 빼앗겨 지난 51년간 지켜 온 참의원 의장 자리도 내 주게 됐다.

참의원 선거 사상 1986년(36석 획득)에 이은 두 번째 최악의 참패다.

자민당의 패배는 연금 부실 관리,각료들의 잇단 정치자금 의혹과 실언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그러나 연금이나 각료들의 돈 문제,실언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선거에서도 숱하게 쟁점이 됐던 것들이다.

문제는 이 쟁점들이 이번 선거에선 왜 그렇게 폭발력을 발휘했느냐는 점이다.

그 폭발력은 아베 정권 스스로가 자초했다는 생각이다.

연금 문제든,각료들의 정치 자금과 실언이든 모든 것에 너무 안이하게 대처해 민심 이반을 초래했다는 얘기다.

연금 문제만 해도 그렇다.

누가 낸 연금인지 알 수 없는 기록이 5000만건을 넘는다는 사실을 아베 총리가 처음 파악한 건 지난 2월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를 즉각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국회에서 야당의 추궁과 언론의 집요한 취재로 그 사실이 국민들에게 공개된 5월에야 뒤늦게 움직였다.

국민들의 노후 생활과 직결된 연금 문제를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문제 각료의 처리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자금 의혹으로 자살한 마쓰오카 도시카스 전 농수산상,역시 정치자금 구설수에 오른 사다 겐이치로 전 행정개혁상,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를 당연시한 발언을 했던 규마 후미오 방위상 등이 문제가 될 때마다 아베 총리는 "별일 아니다"며 감쌌다.

국민 여론이 비등해도 버텼다.

결국 끝까지 버티지도 못하고 문제 각료들을 사퇴시키는 뒷북을 치고 만다.

처음부터 국민 여론을 존중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비단 아베 총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유력한 총리 후보 중 한 명인 아소 다로 외상은 최근 선거 지원 강연 중 치매 환자를 비하하는 언급을 해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각료들의 잇단 실언이 정권의 인기를 끌어내려 선거 패배가 예견되던 때였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치매 환자도 아닌 아소 외상이 또 실언을 한 것이다.

집권 세력 내 긴장감이 없었다는 방증이자 국민 여론을 우습게 알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무시당한 일본 국민들은 민의를 가볍게 여기면 어떻게 된다는 걸 투표로 보여줬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향해 뛰고 있는 한국의 정치인들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선거 결과였다.

아베 총리는 선거 이후 "반성할 건 반성하고,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개혁을 완수하는 게 내 사명"이라며 사퇴는 않겠다고 버틴다.

과연 그는 무엇을 반성한 것일까.

선거 당일 아사히신문 출구 조사 결과 국민의 56%는 '아베 총리가 사임해야 한다'고 했고,자민당을 찍은 사람 중에서도 30%는 '물러나야 한다'고 답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