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10년을 여는 사람들 - 유룡 KAISTM 화학과 교수 >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16일.세계적 화학자인 유룡 교수(52)를 인터뷰하기 위해 대전 유성구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찾았다.

그의 연구실에 들어서면서 인사차 날씨 얘기를 꺼냈다.

"장마가 시작되려나 보네요." 그러자 유 교수가 말했다.

"잠깐 기다려보세요.제가 날씨를 한번 볼께요." 그는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시간대별로 구름사진을 살펴보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주변에는 비구름이 약하네요.당분간 비가 많이 오지는 않겠는데요." 기자가 다시 물었다.

"아니 그냥 일기예보를 보시면 될 걸.늘 이렇게 날씨를 보세요?" 당연하다는 듯 그가 대답했다.

"일기예보는 잘 안 믿어요.

늘 제가 직접 날씨를 분석합니다.

이게 더 정확하거든요."

천성이 그런 걸까.

그의 직업이 과학자인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유 교수는 국내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나노(nano) 연구의 대가로 꼽힌다.

나노는 그리스어에서 난장이를 뜻하는 나노스(nano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정도 크기다.

세상 만물의 기본단위인 원자가 0.1나노미터,이보다 큰 분자가 10나노미터 정도 크기에 불과하니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전자현미경의 세계와 씨름하며 사는 사람이다.

유 교수가 유명해진 것은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에 2000년과 2001년,두 차례에 걸쳐 논문을 실으면서부터.당시 네이처가 주목한 것은 CMK라는 새로운 나노물질이었다.

CMK는 카이스트가 만든 나노 크기의 탄소다공물질이란 뜻.나노물질을 담을 수 있도록 미세한 구멍이 벌집처럼 뚫려 있는 나노 크기의 틀이라고 보면 된다.

"가령 화학반응에 백금을 촉매로 쓴다고 생각해보세요.

같은 1g의 백금도 덩어리채 쓴다면 표면적이 적어 비효율적이지만 백금을 아주 잘게 부수면 표면적이 백배 천배 넓어지니까 경제적으로 훨씬 효율적입니다.

이처럼 효율성이 높은 화학반응 촉매제를 만드는 데 CMK는 유용한 도구죠."

사실 그가 CMK를 만든 것은 1998년이었다.

신물질을 만든 뒤 네이처에 논문 게재를 신청했지만 실리지 못했다.

"당시엔 심사위원들의 인식이 부족했어요.

그쪽에서 심사도 안하고 퇴짜를 놨죠." 무명의 한국 과학자가 낸 논문이 영 미덥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세계적으로 CMK를 인용하는 학술 논문이 숱하게 쏟아져 나오면서 그의 지명도도 올라가고 있다.

덕분에 지난 5월 한국과학재단과 미국 연구정보 전문업체인 톰슨사이언티픽에 의해 '세계 수준급 연구영역을 개척하는 7명의 한국인' 중 한 명으로 뽑히기도 했다.

"연구자 중에는 이미 남들이 개척한 연구영역에 들어가 연구를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새로운 연구영역을 개척해 남들이 따라오게 만드는 사람이 있어요. 이번에 톰슨사의 시상 기준은 후자란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한국 과학이 발전하려면 남을 따라가는 연구자보다 남을 이끄는 연구자가 많아져야 한다. 논문도 양보다 질로 평가받는 시대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새로운 연구영역을 개척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비결을 물어봤다.

"현대과학의 흐름을 이해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죠.하지만 일이 잘 안 풀릴 땐 쉬는 게 최고입니다."

계속되는 유 교수의 설명."과학기술 분야에서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작가와 비슷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는 밤을 새워서라도 연구에 몰두해야 하지만 그런 아이디어가 없을 땐 쉬면서 산책도 하고 긴장을 풀어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너무 일만 하라고 강조하니…."

그는 또 우리나라가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과학자를 많이 길러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했다.

'다양성'은 개개인의 성격 차이뿐만 아니라 보상체계나 교육제도 같은 것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상하이 푸단대에 있는 한 중국인 교수가 그러더군요. 자기 월급은 다른 중국 교수의 3배라고요. 그런데 진짜 월급 많이 받는 교수는 자기보다 5배 더 받는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이공계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죠.만약 우리나라가 중국처럼 한다면 난리가 날 겁니다."

우리 교육제도에 대해서도 사고능력 향상을 방해하고 있다고 일침을 놨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지시대로 공부하고 학교나 학원에서 가르치는 것만 배워서는 독창적인 인재가 나올 수 없잖아요."

유 교수는 어릴적 가난한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나 집안 일을 돕느라 고등학교 2학년이 되서야 본격적으로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학자로서의 자질을 키우는 데는 농촌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새나 동물들을 관찰하고 사물에 대한 호기심을 기를 수 있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어느덧 나이를 훌쩍 먹어버렸지만 아직 그 호기심을 외면할 생각이 없다.

"나이들면 기관장 같은 걸 해야 출세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죠.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더 들더라도 '액티브'하게 연구하고 싶어요. 창의력이 남아 있는한 말이죠."

특별취재팀=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유룡 교수는

1955년 9월 경기도 화성 출생
1977년 서울대 공업화학과 졸업
1979년 카이스트 화학과 석사
1985년 미국 스탠퍼드대 화학과 박사
1996년 카이스트 교수 임명
2001년 기능성 나노물질연구단장,미국화학회 '미래연구상','올해의 카이스트 교수상'
2002년 대한화학회 학술상
2005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2007년 한국과학재단·톰슨사이언티픽 선정 '세계 수준급 연구영역 개척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