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네팔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숭배하는 또 하나의 신이 있다.바로 살아있는 여신이라 불리는 '쿠마리'가 그 주인공. 하지만, 쿠마리를 만나는 것은 네팔에서 쉽지 않은 일중에 하나이다. 때문에 사원 안에서 생활하며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쿠마리의 삶은 그 동안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나는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입니다.”


네팔에는 공식적으로 12명의 쿠마리가 있다. 고대 힌두여신인 ‘탈레주’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쿠마리는 국왕까지 찾아와 무릎을 꿇고 축복을 구할 정도로 네팔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신 중 하나. 네팔인들은 쿠마리의 축복을 받거나 심지어 눈길이 한번만 스쳐도 행운이 온다고 믿는다.

'처녀'라는 뜻의 쿠마리는 당연히 어린 소녀들로 구성된다. 석가모니의 샤카 성을 가진 여자 아이들 중에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검고, 몸에 흉터가 없어야 하는 등 까다로운 32가지 조건을 모두 통과해야한다. 마지막으로 동물의 시체와 피가 낭자한 어두운 방에 갇혀 울지 않고 하룻밤을 무사히 보내면 쿠마리로 선발된다.

취재팀은 몇 차례의 시도 끝에 파탄 지역의 쿠마리를 만날 수 있었다. 다섯 살 때 쿠마리로 선발돼 7년째 쿠마리로 활동하고 있는 파탄의 쿠마리를 통해 쿠마리 선발과정과 쿠마리의 일상을 살펴보았다.


"쿠마리는 여신이 아니라 노예다"… 쿠마리 아동학대 논란



쿠마리들은 보통 2~4살 때 쿠마리로 간택된다. 쿠마리가 뭔지도 모르는 나이에 쿠마리가 되는 것이다.

쿠마리가 되면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사원 안에서 생활해야 하며, 마음대로 얘기를 할 수도, 사원 밖을 나갈 수도 없다.

이 때문에 푼데비 변호사는 “쿠마리들이 감옥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쿠마리 신앙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인생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취재팀이 만난 쿠마리 중 한명은 스트레스로 인해 57세가 된 지금까지 생리를 하지 않으며, 정신 이상 증세까지 보였다.


"사원에서도,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버려졌다"


쿠마리들은 평생 여신으로 살 수 없다. 피를 불결하게 여기는 네팔인들은 초경이 지나면 쿠마리의 자격을 박탈하고 사원 밖으로 내쫓는다. 쫓겨난 쿠마리들은 남편이 일찍 죽는다는 속설 때문에 결혼도 하지 못하고, 집안이 망한다는 이유로 집에 돌아가지도 못해 창녀촌에서 평생을 외롭게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속설을 믿지 않아 쿠마리에서 물러나면 집으로 돌아가 평범한 소녀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두세 살 때부터 10여년을 사원 안에서만 살아온 이들이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건 쉽지 않다.

5년 전 집으로 돌아왔다는 한 쿠마리는 “사원에서는 업혀 다녔기 때문에 인파 속을 걷는 것이 너무 힘들었으며, 말을 거의 안하고 살아서 사람들과의 대화가 여전히 어렵다”면서 “쿠마리로 사는 것보다 일반인으로 사는 것이 더 힘들다”로 속내를 털어놨다. 취재팀이 만난 전직 쿠마리 대부분은 말이 없었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외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최초로 미국을 방문한 쿠마리, 쿠마리 논란에 불을 붙이다!


쿠마리가 아동 학대이자 인권 유린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지난해 11월 네팔 대법원은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지시했다. 결과를 기다리던 중 지난 6월, 이러한 쿠마리 논란에 불을 붙이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네팔 땅을 벗어나기는커녕, 사원 문조차 마음대로 나설 수 없는 쿠마리가 사원의 허락 없이 미국을 방문한 것이다. 쿠마리의 외국 방문은 쿠마리 역사상 처음 있는 일. 해당 사원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분개하며 즉각 쿠마리의 지위를 박탈했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만난 사원 대표는 “소를 먹는 나라에 가 신성을 잃은 쿠마리의 자격을 박탈하는 건 당연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쿠마리의 부모는 “외국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을 몰랐지만 사원의 결정이니 따를 수밖에 없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쿠마리의 미국 방문으로 쿠마리 논란은 이제 네팔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쿠마리 제도를 폐지해야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쿠마리는 보존해야할 전통인가, 아동학대 인가?

20일(금) 밤11시50분에 방송될 'W'에서는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는 쿠마리 제도를 집중 조명한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