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가전회사인 필립스 본사가 있는 네덜란드는 외국과의 공동 연구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다.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의 경우만 하더라도 38개 외국대학과 교류하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 추진하고 있는 과학기술 공동 프로그램(FP)에서도 네덜란드는 약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이 자존심을 내세우는 바람에 풀리지 않는 협력 과제들에서 오히려 이니셔티브를 갖기도 한다. 지난해 끝난 6차 FP 프로그램에서 네덜란드는 나노와 촉매연구 분야,정보기술(IT) 분야에서 사실상 주도권을 쥐었다.

네덜란드가 이처럼 국제 협력을 강화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기업들이 생산 거점을 해외로 옮기기 시작하면서 연구개발(R&D) 활동도 자연스레 네덜란드 바깥에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10년 전 기업들의 해외 연구개발 활동은 10%에 그쳤으나 2000년 이후 최대 40%까지 늘어났다.

이런 추세로 가면 50%를 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이는 연구개발 활동은 사실 네덜란드 경제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연구개발분야 고용인력의 감소와 R&D 위축은 불보듯 뻔하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차츰 생산활동의 거점을 해외로 옮기면서 연구개발 거점도 외국으로 바꾸려고 하는 추세다. 네덜란드와 사정이 비슷하다.

그러나 네덜란드와 다른 게 있다면 국제 공동연구와 과학외교 등에 국가의 능력이 모자란다는 점이다.

한국은 다국적 기업들의 연구개발 센터를 적극 유치하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고 있다. 외국 기업들은 오히려 중국을 선호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국가 간 공동 발명이나 공동 특허출원에서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꼴찌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최근 펴낸 한국보고서에서 한국의 과학기술 분야에서 다른 것은 차치하고 국제화를 빨리 진척시켜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세계의 양대 과학저널인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최근호 이슈 분석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 3개국의 과학기술 협력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관련 분야 전문가의 글을 실었다. 사이언스에는 한·중·일 3개국 과학기술 장관회의 개최와 관련해 일본의 과학기술 관료가 쓴 기고가 실렸다.

원래 이 회의는 한국이 제의해 올해 1월 서울에서 열렸는데도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 관련내용을 기고한 것이다. 일본은 올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과학진흥회(AAAS) 연차대회에서 동아시아 3개국의 국가 혁신전략 세미나를 주최하는 등 과학외교에 열성이다.

한국의 과학외교 수준이 세계 제2의 과학기술 투자국인 일본과 비교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 과학관료들은 너무 '안방 마님'이다.

국제적인 역량을 강화하려면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활동하는 무대에 적극 나서고 홍보해야 한다. 네이처나 사이언스 등 과학저널에 논문이 아니라 이슈를 제기하고 글을 기고하는 정부 관료나 연구자도 이젠 나와야 한다. 이런데도 과학기술 관료들은 요즘 "현재 8명인 해외과학관을 어떻게 하면 더 늘릴 수 있을까"에 관심을 두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오춘호 과학벤처중기부 차장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