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교육청의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학교 용지로 묶여 수십 년간 방치되거나 난개발된 땅이 26만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거래가 기준으로 2조원을 웃돈다.

이로 인해 지역 주민들과 재산권 행사를 둘러싼 갈등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서울시 교육청과 서울시에 행정정보 공개를 청구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1997년 이후 학교 용지로 잡혔다가 해제된 곳은 20곳이었다.

공개된 주소를 바탕으로 인근 부동산에 문의한 결과 용산구 청파동 3가 132-54(3620㎡) 등 확인 가능한 10곳의 땅값만 1조3517억2600만원에 달했다.

그 밖에 용도가 불분명한 10곳을 합칠 경우 2조원이 훌쩍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학교 시설은 시 교육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일단 부지부터 확보한 뒤 용지를 매입하고 학교를 짓는 순서로 진행된다.

학교용지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대표적 사례는 서울 송파구 잠실 재개발 1단지이다.

시 교육청은 2000년 재개발 단지 내 7200㎡ 부지를 신설 고교 부지로 확보했다가 입주를 1년여 앞둔 지난해 말 돌연 취소했다.

강동학군 내 4개 고교가 더 들어서 학교 수요가 없어졌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대해 잠실 재건축조합 측은 "시 교육청이 학교를 짓겠다고 해 해당 부지를 남겨둔 채 나머지 땅에 아파트를 지었다"며 "이제 와서 시 교육청이 학교도 짓지 않고 해당 부지도 매입하지 않겠다고 나자빠지면 어떡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합 측은 "시 교육청이 해당 부지를 매입하지 않으면 공사비를 제때 지급하지 못해 2008년 8월로 예정된 입주 시기가 늦어진다"며 "교육청은 빨리 땅을 매입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시 교육청은 "2000년 당시 298억원이던 땅값이 542억원으로 올라 매입이 힘들다"고 설명했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당시 재건축 조합원들의 반발에도 불구,간신히 학교 용지를 확보했더니 이제 와서 필요 없다고 해 당혹스럽다"며 "현재로서는 학교용지 지정을 해제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 옆 공영 주차장도 이미 잠실 재개발 1단지와 비슷한 운명을 겪은 바 있다.

압구정동 부지는 1976년 학교 용지로 지정됐다가 2004년 10월 해제됐다.

그 기간 동안 압구정동의 금싸라기 땅은 용도가 정해지지 않아 주차장으로만 활용돼 왔다.

땅 소유주인 강남구청은 지난해 이 땅을 공원으로 개발키로 했다.

지역 주민들은 이와 관련,"노른자위 땅을 제대로 개발했으면 국가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좀 더 많은 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 기회 비용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서울 효창공원 앞 골프장도 원래는 학교 부지였다.

현재 골프장 1층 상가인 현대해상(용산구 청파동 3가 132-54,3620㎡) 부지는 1982년 학교 용지로 잡혀 공터로 남아 있다가 1997년에야 해제됐다.

세금 낭비 논란도 일고 있다.

김원태 서울시의원은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세금으로 땅만 매입해 놓고 학교를 짓지 않아 빈 땅으로 놀리는 것은 세금 낭비"라고 꼬집었다.

김 의원은 도봉구 도원초등학교 부지와 광진구 노유초등학교 부지를 예로 들었다.

도원초등학교(도봉구 도봉동 625-210)의 경우 시 교육청이 2006년 초 부지 5만7562㎡를 143억9300만원에 매입했으나 도봉시장 재개발 사업이 지연돼 방치되고 있다.

또 광진구 노유동의 노유초등학교 부지(4만2956㎡)도 135억원에 매입했으나 저출산에 따른 학생 수요 감소로 설립이 늦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시 교육청 관계자는 "2000년까지만 해도 저출산으로 인한 학생수 감소는 상상도 못했다"며 "정확한 학교 수요 예측은 어렵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현행 법은 4000~6000가구가 새로 만들어지면 학교를 만들게 돼 있다"며 "어느 지역에 학교를 만들어야 하는지가 애매해 일 처리에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대규모 재개발사업이 발생할 경우 개발 사업자가 학교를 무상으로 지어 시 교육청에 헌납하도록 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국토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와 건설업계가 이 방안에 반대하고 있어 법안 개정 작업에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