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17개월을 끌어온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에 서명했지만 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 등 민주당 하원 지도부가 찬물을 끼얹는 반대 성명을 발표,미 의회의 비준 동의 전망이 더욱 불투명해졌다.

양국 행정부는 몇 차례 결렬의 고비를 넘기면서 추가 협상까지 벌인 끝에 미 민주당이 요구한 '신통상정책'을 수용했는데도 이 같은 성명이 나오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미 의회에서의 비준 동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17개월간의 노력으로 완성된 한·미 FTA는 폐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민주당의 성명을 "전형적인 정치적 제스처"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결국은 미 의회가 비준 동의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한·미 FTA가 미국이 그동안 다른 나라와 체결한 FTA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협정이어서 의회의 움직임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 민주,자동차에 불만

자동차 등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온 민주당 지도부는 서명식 하루 전날인 29일 "현재 조건 하에서는 한국과의 FTA 체결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성명엔 펠로시 의장과 스테니 호이어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찰스 랑겔 하원 세입위원장 등 미 하원의 한·미 FTA 비준동의와 관련된 핵심 인물이 모두 포함됐다.

이들은 "이 협정은 한국시장에 대한 미국 제조업체들의 진입을 지속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비관세 장벽 문제를 효과적인 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했다"면서 "한국은 지난해 자동차 70만대를 수출한 데 비해 미국은 5000대도 수출하지 못했다"며 자동차 부문의 무역불균형 문제를 강조했다.


◆'정치적 제스처'분석도

민주당 지도부가 반대 성명을 낸 것은 '비준 동의를 거부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정치적 제스처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미국 민주당의 가장 큰 지지 세력은 노동조합이며 노조의 핵심이 자동차 노조인 만큼 이를 감안한 정치적인 성격의 성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회 표결엔 전원 일치가 필요한 게 아니다"면서 "결국 표결에 부쳐지면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대국적인 견지에서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이날 서명식에서 "한·미 FTA가 양국에 막대한 혜택을 가져다주는 협정임을 미 의회가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히 설명하겠으며 이를 통해 의회의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자동차 분야 협상 불만 때문에 민주당이 한·미 FTA 자체를 무산시킬 경우 정치적으로 감내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미 업계에서 자동차 분야를 제외하고는 한·미 FTA의 이득이 크다며 이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미 대선이 또 다른 변수

비준 동의의 가능성이 살아 있다 해도 그 시기가 문제다.

한·미 FTA 효과 극대화를 위해선 최대한 빨리 비준 동의를 받는 게 유리하다.

지난해 11월 집권한 민주당은 또 다시 선거가 실시되는 2008년 11월까지는 다수당이다.

또 내년 11월엔 미 대통령 선거도 실시된다.

만약 공화당 대선주자가 집권하고 의회도 공화당으로 바뀐다면 한·미 FTA 비준은 쉬워지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자신의 임기내에 한·미 FTA를 가능한 빨리 의회에 내려 하고 있다.

공화당 행정부가 신통상정책을 수용한 것도 민주당의 협조를 얻어 비준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다.

미 행정부는 오는 9월30일 이후 의회에 제출할 수 있지만 그 즈음부터 미 민주당은 대선 열풍에 휩싸인다.

내년 2월 각 당별로 주요 예비선거(프라이머리)가 실시되기 때문.특히 힐러리 클린턴 상원 의원 등 민주당 대선 후보 중 상당수가 한·미 FTA 협상 결과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관련,제프리 쇼츠 워싱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IIE) 선임연구원은 "미 행정부는 민주당이 내년 2월 프라이머리를 치른 뒤 잠시 정치적 여유가 생길 때 이행법안을 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과 달리 미국의 경우,통상법안은 단 한 번밖에 비준동의 기회가 없다.

행정부가 제출하면 의회가 무조건 90일 이내에 표결해야 하는 규정 때문이다.

미 행정부는 이에 따라 의원들을 대상으로 세밀히 모의로 투표 결과를 따져보는 '모크마크업(Mock Mark up)'이란 과정을 거쳐 표를 세본 뒤 승산이 있을 때만 법안을 상정한다.

이런 절차를 거치다보니 아직까지 무역촉진권(TPA) 적용을 받은 뒤 비준 동의가 거부돼 폐기된 무역협정은 전무하다.

논란이 많았던 미·도미니카공화국 FTA도 2005년 2표차로 하원을 통과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