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창업한 신생 보안서비스 전문업체 갈릭(Garlik)은 최근 폴란드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차렸다.

갈릭이 폴란드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값싼 엔지니어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미국이나 서유럽에 비해 인건비가 크게 절약됐다.

새내기 정보기술(IT) 업체에 돈을 대려는 투자자가 줄을 섰다는 것도 폴란드를 점찍은 이유다.

1800만달러(약 160억원)라는 적지 않은 자금을 수월하게 마련했다.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한동안 침체됐던 유럽의 IT 벤처캐피털 업계가 최근 들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IT 산업에 사상 유례없는 돈이 몰렸던 지난 2000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열기다.

비즈니스위크 최신호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설립된 유럽 IT 창업용 벤처 펀드 규모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60% 급증한 235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2000년(292억달러) 이후 사상 두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이처럼 많은 돈이 벤처 펀드에 몰리는 것은 그만큼 수익률이 높기 때문이다.

유럽 벤처 펀드가 작년에 거둔 수익률은 평균 17.2%.이는 1980년 이래 상위 25%의 펀드가 올린 수익률과 맞먹는 수준이다.

유럽 벤처 펀드가 짭짤한 수익을 올리자,세계 각지의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

미국의 경우엔 이미 유럽 벤처 펀드자금의 28.8%를 공급할 정도로 깊게 발을 들여놓았다.

보스턴에 있는 벤처캐피털 업체인 '하이랜드 캐피털 파트너스'의 퍼갈 물렌 이사는 "미국 벤처 캐피털리스트가 어느 때보다 열광적으로 유럽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에 이렇게 많은 다국적 자금이 몰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 유럽은 전세계 벤처 캐피털리스트의 관심 밖이었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정부 규제,숨 막히는 관료주의,15개로 나눠진 화폐 등은 유럽 벤처기업 성장에 한계로 작용했다.

활기없는 기업에 돈이 몰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그러나 유럽 시장을 통합하려는 그동안의 노력이 이런 단점을 하나 둘 제거했다.

시장이 커지고 우수인력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벤처기업들의 사업환경이 크게 개선됐다.

2004년 8개 동유럽 국가가 유럽연합에 새로 가입한 것도 유럽 새내기 기업의 성장을 촉진시킨 또 하나의 계기다.

서유럽에 비해 20~50%나 싼 값에 우수한 동유럽 엔지니어들을 맘껏 데려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럽 내 벤처기업 간 유기적인 협력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서유럽과 동유럽 신생기업 사이의 교류가 빈번하다.

네덜란드 소프트웨어 업체인 트리디온(Tridion)이 대표적.이 회사는 우크라이나 키에프에 기반을 둔 벤처기업과 협약을 맺고 핵심 R&D 기능 대부분을 아웃소싱해 소프트웨어 개발비용을 크게 아꼈다.

회사의 경쟁력이 높아져 매출과 순이익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다.

트리디온의 성장은 곧 이 회사에 투자했던 벤처캐피털 회사인 '도티 핸슨 테크놀로지벤처'의 이익으로 돌아왔다.

트리디온을 작년에 9300만달러라는 비싼 값에 'SDL 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에 넘기면서 200%가 넘는 수익을 거뒀다.

벤처기업의 성장이 벤처 캐피털리스트의 이익으로 돌아오고 이 자금이 다시 벤처기업으로 흘러들어가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