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빅히트 드라마 '주몽'을 만들어낸 초록뱀미디어(대표 김기범)의 경영진은 한국에서 세계적 문화콘텐츠 업체로 성장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요즘 절감하고 있다.

세계 시장을 겨냥한 작품을 기획해도 낡은 금융제도와 시스템이 자금 조달을 막고 있어서다.

초록뱀미디어는 '주몽'에 이은 야심작 '엔젤(26부작 TV드라마)'을 일본에 수출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었지만 이 계약서로는 은행에서 자금을 빌릴 수 없었다.

시중은행은 드라마와 같은 서비스 수출 자금을 대출해주는 곳이 거의 없는 데다,설령 빌릴 수 있다 해도 단기에 금리마저 높아 엄두를 낼 수 없다.

수출 업체에 장기 저리 자금을 공급하는 수출입은행마저도 법률에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자금을 지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제조업체에는 수출계약서 한 장이면 수출입은행뿐 아니라 시중은행까지 너도 나도 자금을 빌려주겠다고 나서지만 서비스 업체에는 문이 굳게 닫혀 있는 실정이다.

초록뱀미디어가 10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엔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올해 초.'린다 김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엔젤'은 군사 무기와 관련한 로비스트들의 화려하고 비정한 삶을 담고 있다.

송일국과 장진영이 주연을 맡아 한창 촬영 중이며 SBS에서 9월 초부터 방영한다.

초록뱀미디어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수출을 염두에 두고 외국 업체들과 접촉을 가졌다.

'주몽'의 인지도에다 '엔젤'의 탄탄한 구성을 높이 평가한 일본의 배급업체 덴츠는 일본 내 방송 판권을 30억원을 주고 사들였으며 계약서도 작성했다.

이 회사는 현재 대만의 GTV와 수출 판권 계약을 추진하고 있으며,중국 홍콩 싱가포르 동남아 등에도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초록뱀미디어는 일본 업체와 맺은 수출계약서를 들고 수출입은행을 찾아 상담했다.

길경진 경영기획본부장은 "'엔젤' 제작비 중 절반이 넘는 60억원가량은 자체 자금으로 마련했으며 나머지도 방송사 등과 함께 부담하기 때문에 당장 큰 문제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엔젤' 수출계약서로 자금을 마련해 놓으면 다음 기획물을 미리 준비해 한류 붐을 장기적으로 끌고 나가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느냐"며 답답해 했다.

수출입은행 중소기업금융부는 대출이 가능한지 검토에 들어갔다.

하지만 수출입은행법에 걸려 대출이 불가능했다.

수출입은행법 18조 1항의 1호와 2호는 '상품의 수출' 또는 '외국에 대한 기술 제공'에 한해 대출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드라마와 같은 문화 콘텐츠는 '상품'이 아니며 '기술'에도 해당하지 않아 취급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영화는 물론 게임 소프트웨어 등 다른 한류 문화상품도 대출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초록뱀미디어는 이에 따라 펀드 등 다른 형태의 자금 조달을 모색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문화콘텐츠 수출 지원을 가로막고 있는 조항의 개선을 재정경제부에 건의했다.

수출입은행법 18조 1항의 1호와 2호에서 '상품'을 '물품'으로,'기술'은 '용역 및 전자적 형태의 무체물'이라는 말로 바꾸면 해결된다는 것이다.

문화서비스 업계는 정부가 서비스업 육성을 천명한 만큼 수출입은행의 제안처럼 이른 시일 내 법률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


< 현재 수출입은행의 업무범위 >

제1조(목적) 이 법은 한국수출입은행을 설립해 수출입과 해외투자 및 해외자원개발에 필요한 금융을 공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18조(업무) ①수출입은행은 제1조의 규정에 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 각 호의 업무를 수행한다.

1.상품의 수출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금의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대출 또는 이로 인해 발행된 어음의 다른 금융기관에 대한 할인

2.외국에 대한 기술(해외에서 행하는 건설공사 포함)의 제공을 촉진하기 위해 그에 필요한 자금의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대출 또는 이로 인해 발행된 어음의 다른 금융기관에 대한 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