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최근 사임을 발표했다.

그는 이제 다우닝가 10번지(총리 관저)를 떠날 예정이다.

그의 사임 발표는 지난 3일 영국 지방 선거에서 노동당이 참패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왔다.

그는 기업인들로부터 거액의 정치 자금을 받고 그 대가로 이들을 상원의원 후보로 지명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국민들의 지지를 잃어갔다.

이라크전 지원도 그의 인기를 떨어뜨리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난주 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면 61%에 달하는 영국 국민은 블레어 총리가 이 같은 정치적 시련 속에서도 전반적으로 업무 수행을 잘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블레어의 매력일까.

간단히 대답한다면 블레어가 집권한 지난 10년간 영국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으로는 인기를 얻는 데 실패했다.

그가 테러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갖고 미국을 지지하는 모습은 옳은 결정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그는 자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유권자들은 블레어에 대한 불만을 표시할 때 항상 이라크전을 들먹거렸다.

블레어는 그의 라이벌이자 후임자인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 때문에 교육 및 건강 부문 개혁이 다소 방해를 받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한편으로 블레어는 중앙은행의 독립과 같은 공적에 대해서는 브라운 장관에게 빚을 지고 있다.

또한 영국이 유로화에 가입하지 않은 것도 브라운의 생각이 크게 반영된 것이다.

이처럼 블레어 정부는 영국 경제에 많은 기여를 했다.

영국 국민들도 이러한 부분엔 동의했다.

하지만 그들은 블레어가 행동없이 말만 많다고 여겼다.

일정 부분 사실이다.

그렇지만 블레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실수는 블레어의 정치적 힘을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블레어는 선거마다 노동당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이같이 집권 기간 내내 눈부신 활약을 했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그의 힘을 피할 수는 없었고,그들도 블레어와의 정치적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물론 불가피하게 이러한 블레어의 힘은 시들어갔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서도 그는 지난 8일 북아일랜드의 신·구교 공동자치정부 설립을 이끌어내는 등 여전한 힘을 과시했다.

하지만 블레어는 노동당 내 갈등이 불거지면서 사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까지 몰리게 되었다.

노동당 내 브라운파는 블레어에게 조기 사퇴를 강요했고 지난해 9월 블레어는 "내년 여름 안에 사임하겠다"고 공표를 했다.

그는 결국 곧 물러나게 된다.

앞으로 영국의 정치 파워는 브라운파와 신(新)블레어파,그리고 보수당파로 나뉠 것이다.

정치 갈등도 불거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명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브라운 장관은 블레어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할 사람들에 대해 분명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이 글은 미국의 시사 잡지 스펙테이터(Spectator)의 편집장인 매튜 단코나(Matthew d'Ancona)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블레어의 기록(The Blair Record)'이란 제목으로 쓴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