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돈 <남부지방산림청장>

지난해 6월 산림청은 47년 만에 금강소나무 군락지인 경북 봉화·울진·영덕·영양 4곳을 국민에게 개방했다.

구한말 혼란기와 일제 강점기 일본인까지 가세한 불법벌목으로 멸종위기에 처했던 금강소나무를 정부가 국민의 출입을 막고 그동안 보호해 왔던 일이 결실을 맺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로써 이름조차 생소한 우리 소나무의 대표 수종인 금강소나무 숲을 누구나 찾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 한국인에게 소나무는 너무나 친근하다.

태어날 때 대문에 걸었던 금줄에 매달린 푸른 청솔가지.그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면 소나무로 지은 집이 우리를 반긴다.

그리고 소나무 가지를 잘라 밥을 짓고 방을 데워 삶을 영위하다 죽음에 이르러서는 소나무로 짠 관 속에서 영면한 것이 우리 한국인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는 열성이 대부분이어서 비뚤어지고 키도 작아 볼품이 없다.

우리 애국가에 등장하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소나무를 사랑했던 우리 한국인 눈에 겉모양을 붉은 색으로 치장하고 고운 외피로 '미인송'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된 금강소나무는 오히려 이상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 귀하고 가치가 있었기에 조선조 시대부터 왕의 특명으로 군락지의 백성 출입을 막도록 '봉산제도'를 시행하고 감시인을 두어 지키게 했다.

그리고 그 사용처도 오직 궁궐 보수용과 자신을 포함한 왕후의 관(곽관재)으로 국한시켰다.

금강소나무 숲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저 소나무가 우리 것 맞느냐"고 묻는 것은 그런 역사적 배경을 모르는 장삼이사(張三李四)조차도 금강소나무에서 느꼈던 경외감 때문이었으리라.

그런 금강소나무를 올해도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

오는 6월부터 11월까지 지난해 개방했던 4개 지역 외에 봉화 고선리 등 개방지역도 확대하고 탐방로도 더 만들었으며,소나무 이야기를 들려줄 숲 해설가도 더 많이 교육시켜 국민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금강소나무 개방이 올해로 2년 차에 불과해 그동안 대부분의 국민이 아직 이 군락지로 탐방을 오지 못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우리 소나무의 진면목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소나무의 푸른 기상과 늠름한 기개를 느끼도록 해줘야 한다.

비록 나이 든 세대에서는 피압박과 전쟁,그리고 수많은 혼란을 겪었지만 자라나는 우리의 후대들은 세계와 함께 할 수 있는 무한한 용기와 지혜를 지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곧고 높게 뻗은 금강소나무를 껴안고 어루만져 보는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게 기성세대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