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Nature)는 최근호에서 오는 6일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를 치를 우파인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와 좌파인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 후보를 인터뷰했다. 질문 내용은 프랑스의 과학기술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대학을 어떻게 혁신해야 하나. 과학기술자들의 처우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느냐 등이었다.

답변에서 후보들의 과학기술을 보는 시각은 명쾌하게 양분됐다. 사르코지 후보는 국가 과학기술 정책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국가보다 민간이 우선돼야 한다는 우파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집권하면 먼저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하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대학 스스로가 총장과 학생을 선발하고 대학이 직접 기업 펀딩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역설했다.

사르코지는 또 프랑스에도 영국의 옥스퍼드와 같은 유명한 대학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많은 대학에 퍼주기식 지원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엘리트 대학을 중점적으로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는 더욱이 민간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 의욕을 높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루아얄 후보는 현재의 자크 시라크 정부가 2004년 과학기술 예산을 대폭 삭감,과학기술자들이 거리로 내몰린 것을 지적하면서 이로부터 프랑스의 경쟁력을 잃었다고 우파를 공격했다. 그는 집권하면 정부 주도 아래 과기정책을 펴 5년 동안 매년 10%씩 과학기술 예산을 늘려 최고의 연구개발 투자국으로 자리잡겠다고 강조했다. 모든 연구자들과 대학에 똑같은 조건을 부여하고 적절한 배분을 하겠으며 정부가 직접 과학기술 혁신을 주도해 기초 원천기술이나 개발에 실패할 수 있는 리스크기술에도 적극 투자할 것임을 명백히 했다.

우리나라 대선 후보들은 대선기간 동안 과학기술 강국을 계속 외쳐왔다. 40년 정치사에서 대선 후보들은 과학기술 입국,과학기술 중심사회 등의 용어를 사용하면서 과학기술 행정 조직을 바꾸고 이공계 대학의 정원을 계속 늘리겠다고 공약해왔다. 그러나 무턱대고 쏟아내는 '공약' 탓에 과학기술 정책은 집권자가 바뀔 때마다 계속 달라졌다.

이공계 살리기가 대학생 수 늘리기로 변질,이공계 대학생 수는 세계 최고수준이 돼버렸다. 연구개발의 중복 투자나 효율성 문제 등도 계속 제기됐고 무엇보다 과기정책의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둬야 할지 그 방향타가 자주 흔들렸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대선 예비후보들의 과학기술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국제 과학비즈니스 도시를 만들겠다는 후보가 있고 '구국의 심정으로 이공계를 살리겠다'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건 후보도 있다.

하지만 정작 후보들 간 정책 차별성은 여전히 눈에 띄지 않고 막연한 구호만 남발되는 것 같다. 과학기술 혁신 주체가 민간인지 정부인지,엘리트 대학 양성인지 재원을 모든 대학에 적절하게 배분할 것인지 등을 고민하는 밑그림은 찾아볼 수 없다. 과학기술정책의 '백년대계'와 이공계교육 바로세우기를 위해 어떤 지향점을 내놓을 것인가. 유권자들이 대선후보에게 기대하는 것은 이것이다.

오춘호 과학벤처중기부 차장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