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는 영화에서 자주 다뤄지는 소재다.

상처가 어떻게 치유되는지 지켜보는 관객들은 감정이입을 통해 자신의 아픔까지 어루만진다.

그러나 치유의 과정이 가슴에 와닿기 위해서는 상처의 '진정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받게 되는 상처에 대해 함께 느끼고 아파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역전의 명수'를 선보였던 박흥식 감독의 두 번째 멜로 드라마 '경의선'은 이런 관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영화는 지하철 기관사 만수(김강우)와 대학강사 한나(손태영)가 경의선 기차를 매개로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상처를 감싸안는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주인공이 각자 상처받게 되는 과정을 과장없이 보여주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만수는 마음에 두고 있던 한 여인이 자신이 운행하는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을 한다.

한나는 유학시절 연인이었지만 이제는 유부남인 같은 과 교수와의 불륜이 드러나고야 만다.

물론 그들의 상처가 작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관객들이 이 같은 상처를 '자신의 것'처럼 공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주인공들의 사연에 현실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 잠시 함께 걸은 사이인데 모텔에서 한 방을 쓰자는 한나나 이를 별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만수나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들은 아니다.

특히 독일유학 박사인 한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갖추고 있어 관객들이 쉽게 동일시하기 힘들다.

프로급 스트레칭으로 완벽한 몸매까지 강조하는 장면은 왜 넣었는지….그가 국회나 방송국에서 일하는 평범(?)한 친구들에게 공허한 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에서는 상처보다는 권태감같은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캐릭터 설정이 그렇다는 것이지 배우들의 연기가 못 미쳤다는 얘기는 아니다.

"좋은 영화는 제작비로 따질 수 없다"는 김강우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배역에 충실한 연기를 보여줬다.

"연기력 논란에 많이 힘들었다"는 손태영 역시 첫 주연급 작품에 최선을 다한 모습이다.

박 감독도 그의 말대로 3억달러(2850억원)가 들어간 '스파이더맨3'의 570분의 1에 불과한 제작비로 서정적인 장면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5월10일 개봉.15세 이상.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