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熙範 < 한국무역협회 회장 >

유럽 주요 도시의 호텔비는 때에 따라 들쭉날쭉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평상 시 100유로 정도면 족하던 스탠더드룸이 때론 500유로를 호가한다.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서라도 묵을 방을 구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상황이 종종 빚어진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와 하노버,스위스의 바젤,이탈리아 밀라노를 비롯해 유럽의 비즈니스 중심도시를 방문하는 비즈니스맨들을 이 같은 곤경에 빠뜨리는 주범(?)은 대개 국제전시회다. 전시회 기간 중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것은 비단 호텔뿐만이 아니다. 전시장 및 이에 직접 관련된 산업은 물론이거니와 택시,식당,쇼핑상가가 모두 쾌재(快哉)를 부른다. 전시회가 부수적으로 가져다주는 경제적인 효과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체적인 사례로서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되는 보석시계전을 보자. 바젤은 인구가 19만명 남짓한 그리 크지 않은 도시다. 그러나 여기에서 매년 4월에 개최되는 보석시계전(바젤월드)은 규모면에서나 내용면에서 단연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출품업체가 2100개사에 달하며 유럽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9만5000명의 참관객이 한꺼번에 몰려들다보니 시내는 장사진(長蛇陣)을 이룬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가전제품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또한 좋은 예다. 전시면적은 축구장 12개에 해당되는 9만3000㎡에 달하고 여기에 출품한 업체는 130개국 2400여개사에 이르렀다. 이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를 찾은 사람은 자그마치 13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우리 역시 양적으로는 전시 선진국과의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다. 국내의 전시장 면적은 17만㎡규모로 20여년 전 한국종합전시장(COEX의 전신)이 유일하던 때와 비교하면 13배로 늘어났다. 전시회 주최자가 150여개에 달하고 이들이 개최하는 전시회가 연간 350여회에 달한다. 하루에 1개씩의 전시회가 열리는 셈이다.

그러나 국제화,대형화라는 관점에서 우리 전시회가 가야할 길이 아직 멀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전시회 가운데 2만㎡이상의 전시면적을 가진 전시회는 20여개에 불과하다. 국내 전시회를 찾는 바이어가 꾸준히 늘고 수출증대 효과도 커지고 있으나 딱히 세계적 수준이라 내세울 만한 전시회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전시회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교통과 통신,언어,숙박 및 전시시설,전시업체 역량,산업기반과 기술력,내수시장 등이 이에 해당된다. 특히 탄탄한 국내산업 기반이 국제적인 전시회를 육성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는 점에서 우선 주목되는 분야는 IT산업이다.

IT산업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주력산업이다. 지난해 IT산업 수출은 1134억달러로서 총수출의 34.8%를 차지했고 국산제품의 세계시장에서의 점유율 또한 만만치 않다. 게다가 국내기업들이 내놓은 신제품들은 내로라하는 국제전시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할 정도다. 국내에 IT강국의 위상에 걸맞은 국제적인 IT전시회가 생겨날 수 있을 법하다. 그간 걸림돌이 된 것은 유사한 전시회가 난립해 대형화의 기회를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는 19일부터 4일간 일정으로 COEX에서 개최되는 한국정보통신대전(Korea IT Show 2007)은 유사한 전시회의 통합을 통해 대형화와 국제화를 모색하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따로따로 개최되던 KIECO,IT KOREA,EXPO COMM 등 5개의 전시회가 합쳐진 이번 전시회는 전시규모가 커지고 내방(來訪) 바이어의 수도 크게 늘어나게 됐다. 국제적인 전시회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전시는 산업을 바꿀 수 있는 산업이라고 한다. IT전시회의 대형화,국제화에 돌파구를 연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정부,전시업계 및 IT업계가 함께 노력한다면 정보통신대전이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전시회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우리나라 IT산업을 한 단계 도약케 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