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항전 승리의 상징"

북한이 반환의사를 밝힌 '푸에블로호'는 미군의 정보수집함으로 1968년 1월 23일 원산 앞바다에서 정찰 활동 중 북한 어뢰정에 의해 나포됐다.

자국영해를 침범했다며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북한은 함장을 비롯한 83명의 선원도 전원 붙잡았다.

나포 과정에서 승무원 1명이 사망하고 수명이 부상했다.

미 해군 역사상 처음으로 해군함정이 납치된 이 일로 미국은 비상이 걸렸다.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를 동해로 급파하는 등 비상조치를 취했고 한국도 전쟁태세에 들어갔다.

미국은 북한의 우방인 소련에 `압력을 가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나 소련 주재 북한 대사가 소련 외교부 장관의 호출에 응하지 않을 정도로 북한은 단호하게 나섰다.

북한측은 `영해 침입을 시인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11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사망자 유해와 생존 승무원 82명은 판문점을 통해 미국에 송환됐다.

미국 정부는 승무원들의 안전을 위해 북한측에 `정중히 사과한다'는 문서를 넘겨줘야 했다.

하지만 선체와 장비는 북한에 몰수됐다.

이후 푸에블로호는 원산 앞바다에 정박됐다가 1999년 평양 대동강 '충성의 다리' 근처에 옮겨졌다.

북한은 푸에블로호를 '대미 항전 승리'의 전리품으로 과시하면서 주민 교육용 선전도구로 쓰고 있다.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거의 예외없이 푸에블로호를 `참관'하도록 하고 있다.

푸에블로호 사건은 북한에서 공중정찰기 EC-121 격추사건(69.4.15)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76.8.18)과 함께 미국의 '도발'에 대한 '3대 대응경고'로 꼽힐 정도로 상징성이 크다.

미국에서는 푸에블로호 반환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꾸준히 상.하원에 제출돼 왔다.

상원의 경우 지난해 국무장관에게 반환 노력에 관한 경과 보고서를 제출토록 요구했고 하원은 지난 1월 반환 결의안을 제출했다.

(서울연합뉴스) 서동희 기자 dhsuh51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