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이 임박했던 지난 1일. 정부의 정책홍보 사이트인 국정브리핑(www.korea.kr)은 '초조한 일본…왜 미국과 FTA 안 할까'란 글을 올렸다. 일본 경제계가 '(한·미 FTA 체결로) 한국 제품이 미국 시장에 무관세로 들어가면 일본 경제는 공동화될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다는 게 요지다. 하타케야마 노부루 국제경제교류재단 회장이 아사히신문에 기고한 글을 토대로 만든 내용이었다. 한국의 언론도 한·미 FTA 타결 이후 일본이 미국 시장을 한국에 빼앗길까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희망섞인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기자가 일본에서 피부로 느끼는 감은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의 '희망'만큼 일본에서 '걱정'이 주류를 이루는 듯한 분위기는 아니다. 대표적인 경제신문인 니혼게이자이를 비롯한 일본의 주요 언론은 한·미 FTA 소식을 담담하게 보도하고 있다. '미국 시장을 다 빼앗기게 됐으니,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끼기 어렵다.

일본 정부도 마찬가지다. 아마리 아키라 경제산업성 장관은 얼마 전 "한·미 FTA가 체결돼도 일본 기업에 심각한 영향은 없다"고 말했다. 일본이 아직 한·미 FTA의 '뜨거운 맛'을 보지 못해서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우리 생각이다. 일본의 여유엔 이유가 있다.

우선 일본 자동차 업계는 한국 자동차의 가격경쟁력이 다소 높아지겠지만 미국의 2.5% 관세철폐가 그리 위협적이진 않다고 본다. 영업이익의 절반을 미국에서 벌고 있는 도요타자동차는 "한국차와의 가격경쟁에서 불리해지면 미국 현지생산을 늘릴 것"(니혼게이자이신문)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캐나다에만 10개의 자동차 공장을 갖고 있는 도요타다.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127만대보다 많은 180만대를 북미에서 직접 만들었다.

전자분야도 비슷하다. 한국이 일본과 경쟁하고 있는 평판TV의 경우 미국의 관세(5%) 철폐로 한국 상품은 80달러(42인치 기준)의 가격인하 효과를 얻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일본의 마쓰시타와 샤프는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두 회사는 이미 미국 수출분을 대부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엮인 멕시코에서 조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로 한국시장을 미국 기업에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별로 없다. 한 일본 기업인은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하는 물품의 60% 이상이 부품 소재다. 일본 기계와 부품에 수십년간 길들여진 한국 기업이 하루아침에 미국 제품을 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럼에도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게이단렌은 한·미 FTA에 자극받아 일본도 미국 한국 등과 FTA를 서둘러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이 FTA에 적극 나서면 경쟁력 강한 일본기업은 더 강해져 한·미 FTA 효과는 반감될 게 뻔하다.

한·미 FTA로 한국 경제가 단번에 욱일승천할 것이란 환상은 버려야 할 것 같다. 최소한 일본과의 경쟁관계만 놓고 보면 그렇다. 한·미 FTA는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이걸 지렛대로 한국이 스스로 얼마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품질로도 일본 제품을 앞지를 수 있는 기술력,일본에 종속된 부품·소재산업을 자립시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일본을 정말 초조하게 만들 수 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