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청년들의 구타가 한국인 유학생을 사망케 한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러시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안전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1996년 10월 최덕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가 자신의 아파트 계단에서 살해를 목표로 한 괴한에게 피살된 적은 있지만 한국인이 폭행을 원인으로 사망에 이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주목을 끌고 있다.

한국인들에 대한 폭행 사건이 접수된 곳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블라디보스토크가 주를 이루지만 외국인들의 피해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등 러시아내 모든 지역이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 2005년 2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0대 한국인 유학생 2명이 무참히 칼에 찔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사건은 러시아 스킨헤드의 위험을 한국인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

당시 페테르부르크에서 음악을 전공하던 조모(16)씨는 러시아 청년들에 둘러싸인 채 몸의 11군데를 흉기에 찔렸다.

한달뒤인 3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중고차 매매업을 하는 한국인 김모(45)씨가 러시아인 2명에게 머리를 가격당한뒤 돈 가방을 빼앗기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모스크바에 유학중인 이모씨는 "언론에 보도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모스크바에서도 외국인 구타사건이 빈번하다"면서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는 늘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주러대사관에는 접수되지 않았지만 유학생 조모씨(32)는 모스크바 거리를 거닐던중 갑자기 뒤에 나타난 청년들이 병으로 머리를 때려 실신하기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북한인들도 스킨헤드의 표적이 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북한인 건설 인부 3명이 러시아 청년들로부터 폭행을 당해 2명이 사망했다.

이에 앞서 3월에는 나홋카 주재 북한 총영사관에서 일하는 영사가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2002년 3월에는 이준화 당시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한국 총영사가 산책후 귀가하던중 괴한들로부터 얼굴을 구타당했다.

러시아에서 스킨헤드의 활동이 좀처럼 줄지 않는 것은 외국인에 대한 젊은이들의 충동적인 반발심 외에도 러시아 법당국이 엄격한 제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외국인을 살해한 러시아인들에게 살해죄가 아닌 민족간 불화를 조장하는 혐의만을 적용해 형량을 낮게 선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페테르부르크 시법원은 2004년 10월 베트남 유학생 폭행사망 사건과 관련, 기소된 17명의 피의자 중 3명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했다.

3명에 대해서도 살해죄를 배제한 채 2명에게는 민족간 불화 조장 혐의를, 다른 1명에게는 강도 혐의를 적용했을 뿐이다.

특히 용의자를 경찰이 체포하는 것도 쉽지 않아 폭행범을 형사기소해 재판까지 받는데는 상당한 시간적, 물질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러시아 경찰은 지난 9일 숨진 유학생 이씨를 폭행한 청년들의 행방도 전혀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연합뉴스) 김병호 특파원 jerom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