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실무그룹 '쾌속항진'..북.일, 입장차만 확인 `답보'

북핵 '2.13 합의'가 낳은 5개 실무그룹들의 활동은 지난 5~8일 열린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회의를 출발점으로 각개 약진을 시작했다.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이 전 세계적 관심 속에 화려한 첫 발을 내디딘 반면 북.일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은 납치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선명한 입장차 때문에 불안한 출발을 했다.

또 19일 6자회담 재개 전 잇달아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비핵화, 경제.에너지 협력, 동북아 안보협력체 등 나머지 3개 실무그룹 회의에서 참가국들은 `2.13 합의'에 담긴 초기조치 이행의 세부 로드맵을 그려낼 것으로 기대된다.

◇북.미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 지난 5~6일 뉴욕에서 이뤄진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만남은 `역사적'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내실있게 진행됐다는게 외교가의 대체적 평가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북.미가 너무 급작스럽게 가까워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북한과 미국이 6자회담의 기본 목적지인 한반도 비핵화와 그것을 가능하게 할 가장 중요한 정치적 환경인 북.미 관계 정상화를 가능한 한 조속히 이행하는데 뜻을 같이 했다는 점이 이번 회담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김 부상도 지난 10일 회담 성과에 대해 "북.미 양국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대적성국 교역법에 따른 제재 해제 등의 현안 문제를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하루 빨리 해결하고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고 소개했다.

세부적으로는 북.미가 올해 안에 각각 핵시설 불능화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및 대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를 이행한다는데 교감한 것은 향후 6자회담의 전망에 청신호를 켠 대목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핵시설 불능화에 이르기까지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신고문제를 포함,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고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대적성국교역법 적용종료도 미 의회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남은 과정 역시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그 과정에서 북.미가 이견을 노정해 충돌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행과정을 지켜봐야 할 이들 문제를 차치하고 양측이 방코델타아시아(BDA) 관련 금융제재 해제와 영변 핵시설 폐쇄.봉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수용을 각각 이행하기로 한 초기단계 조치를 넘어 2단계 조치에까지 논의를 진행하고 그 이행완료의 목표시점을 언급한 사실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북.일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 북한과 일본은 지난 7~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관계 정상화 첫 실무그룹 회의를 가졌지만 납치 문제 해결을 두고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차기 회담 일정도 잡지 못한채 회의를 접었다.

일본 측은 ▲일본인 납북자 전원 석방 ▲유사 납북자에 대한 정밀 재조사 실시 ▲납북관련 책임자에 대한 처벌과 송환 등을 요구했고 북한은 이 문제는 이미 2002년과 2003년 조.일협정에 따라 해결된 문제라는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 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가 성과없이 끝나면서 일본이 북한 핵실험 후 자국 차원의 강력한 대북 제재조치를 유지하고 북한의 초기조치 이행에 대한 상응조치인 에너지 지원에도 동참하지 않음으로써 생긴 양측간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진 양상이다.

이 때문에 북.일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은 자체적으로 파행을 겪는 것을 넘어서 동력이 살아난 6자회담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비핵화 실무그룹 = 중국이 의장을 맡는 비핵화 실무그룹은 북한이 초기단계 시한인 60일 안에 이행하기로 한 핵시설 폐쇄.봉인 및 IAEA 사찰 수용 등의 세부 일정을 협의하게 될 전망이다.

이 회의에서 6개국은 13일께로 예정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 일행의 방북때 도출될 북한과 IAEA간 합의 사항을 기초로 세부 이행 절차를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양측은 60일안에 이행키로 한 `핵 프로그램 목록 협의'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자리에서 핵프로그램과 보유 핵무기를 구분하고 있는 북한과 핵무기를 포함한 폐기 대상의 전체 목록을 논의하길 바라는 나머지 관련국들간에 어떻게 의견 조율이 이뤄질지가 관심거리다.

특히 북한 내 HEU프로그램 또는 UEP(우라늄농축프로그램)의 존재에 대해 미국이 증거를 제시하고 그에 대해 북한이 해명하는 절차가 원만하게 진행될지도 6자회담 진전여부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경제.에너지 협력 실무그룹 = 한국이 의장을 맡은 경제.에너지 협력 실무그룹은 초기단계 조치 이행시 북한에 제공될 중유 5만t 상당의 지원 계획을 우선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중유 5만t 상당의 지원'으로 2.13 합의에 명시된 만큼 북한이 원하는 아이템을 밝히면 한.미.중.러 등 4개국은 이에 대한 제공 방안을 협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북한이 이변이 없는 한 중유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며 한국 측이 이미 중유 5만t 제공을 전담할 용의를 피력한 만큼 논의과정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정부 당국은 보고 있다.

참가국들은 또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와 핵시설 불능화 시점에 맞춰 제공될 중유 95만t 상당의 지원을 시기적으로 어떻게 세분화할지, 참가국들간에는 어떻게 분담할지 등에 대해서도 개략적으로나마 협의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 러시아가 의장을 맡은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실무그룹은 5개 그룹 중에서 시급성 면에서 가장 떨어지는게 사실.
그러나 북.미관계 정상화, 그리고 몇달 안에 시작될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와 함께 북핵폐기를 위한 정치적 환경 조성 분야에서 한 축을 구성하는 만큼 논의를 개시하는 것 자체가 갖는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 회의에서 각국은 유럽과 동남아 등 타 지역의 안보협력 사례를 참고해가면서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를 어떤 형태로 구축해 갈 것인지 등에 대해 `브레인 스토밍'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