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 장애' 관측 지배적..장기화하면 `중대 걸림돌'

북.일 양측이 북핵 `2.13합의'에 따라 처음으로 가진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담에서 접점을 찾지 못함에 따라 북.일 실무그룹이 향후 6자회담의 걸림돌이 될지 주목된다.

이번 회담 결렬은 향후 관계 진전에 대한 속도감을 엿보게 만들었던 5∼6일 뉴욕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결과와는 사실상 정반대의 결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6자회담 산하 5개 실무그룹 가운데 내주부터 잇따라 열릴 경제.에너지, 한반도비핵화, 동북아.평화안보체제 등 나머지 3개 그룹 회의에 북.일 회담 결과가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나아가 실무그룹 회의 직후인 19일로 잡혀 있는 6자회담 본회담에도 난기류를 조성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 주시하는 전문가들도 나오고 있다.

◇ 결렬 배경은 납치문제 = 이번 하노이 북.일 회담의 결렬 배경은 일본인 납치자 문제 때문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이 나서 `납치 문제 해결 없인 국교정상화도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고 하노이 회담장에서도 먼저 납치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태도를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 납치 문제에 미사일, 핵 문제를 포함해 포괄적 접근을 시도한 반면 북한의 경우 납치문제는 2002년 북.일 평양선언을 통해 다 해결된 것인 만큼 과거청산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펴며 충돌한 셈이다.

북한으로서는 핵 불능화까지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데 이어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회담이 급진전하고 있는 정세가 일본보다는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보고 강경한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일간 납치 문제는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1991년 1월부터 시작된 북.일 국교정상화 협상에서 항상 걸림돌이 돼 왔으며 2002년 9월 17일 평양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정상회담에서도 다뤄졌던 사안이다.

당시 양측은 평양선언 3항에서 "일본 국민의 생명.안전과 관련된 현안에 대해 북한은 북.일 양국의 비정상적 관계 속에서 발생한 이런 유감스러운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확인했다"고 합의했다.

그 후 일본인 납치생존자 5명의 귀국, 같은해 10월 제12차 국교정상화교섭, 2004년 5월 고이즈미 총리의 2차 방북 등으로 이어졌지만 같은 해 북한이 제공한 피랍 일본인인 요코타 메구미의 유골을 일본측이 가짜로 판정하면서 진위 공방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태다.

◇ 6자회담에 악영향 주나 = 납치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집착은 종전 6자회담장에서도 그대로 표출됐고 양자 현안이 회담의 걸림돌이 되면서 관련국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비핵화를 논의하는 장소에서 자국 현안을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실제 2.13합의 당시 대북 지원의 균등 분담에 일본이 빠진 것은 납치 문제에 `올인'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납치 문제 해결 없이는 대북 지원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여기에는 일본의 국내 정치적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내에서 납치 문제는 단순히 오래 묵은 미제사건이 아니라 정권의 지지율 등락을 좌우할 현안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북.일 실무그룹 회의가 재개되더라도 일본 측이 요구해온 납치문제 재조사 등에 대한 북한의 양보가 없는 한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 북.일 그룹의 `부진'이 다른 실무그룹의 진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들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2.13합의 3조다.

이는 "원칙적으로 한 실무그룹의 진전은 다른 실무그룹의 진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5개 실무그룹에서 만들어진 계획은 상호 조율된 방식으로 전체적으로 이행될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이 대목은 실무그룹 간에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돼 있기는 하지만 북.일 그룹에서 이렇다할 성과가 없을 경우 다른 그룹과 연관된 조율된 행동에 영향을 주는 양면성을 가진 대목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접근하면 일단 경제.에너지 실무그룹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13합의가 대북 지원에 대해 평등과 형평의 원칙에 따라 분담할 것이라고 합의했지만 일본의 참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당장 중유 100만t 상당의 지원까지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앞으로 경수로 제공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경제력을 갖춘 일본의 힘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아울러 북.미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테러지원국에서 북한을 삭제하는 문제와 관련돼 있다.

미 국무부가 매년 4월 발행하는 테러보고서에 북한의 일본인 납치와 적군파 문제가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적군파 문제는 1970년 일본 여객기 요도호를 납치해 북한으로 간 적군파 소속 납치범 가운데 일부가 아직 북한에 머물고 있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요구한 테러지원국 해제를 미국이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선 이들 양대 현안에 대한 가시적인 진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하지만 이처럼 서로 뒤엉킨 상황은 거꾸로 북.일 실무그룹의 진전을 내다볼 수 있는 근거도 되고 있다.

이는 북한 입장에서 핵을 통해 체제 안전과 경제 지원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북.미 관계정상화 그룹과 경제.에너지 그룹의 논의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상황과 관련돼 있다.

즉 북한이 납치 문제에 성의를 보일 경우 미국의 테러 지원국 해제 문제가 쉽게 풀릴 수 있고 경제.에너지 지원에 일본의 경제력을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관측인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도 납치 문제에 진전이 없을 경우 아베 정부가 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대북 압력 일변도에서 접근법을 달리할 가능성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 자민당의 야마사키 다쿠 전 부총재가 지난 1월 일본 정부의 대응이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는 일본이 국제사회의 흐름을 거슬러서는 안된다"며 "올해 안에 전혀 진전이 없을 경우 정부 책임이 문제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아울러 미국의 중재를 점치는 시각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북.미 실무그룹이 가속 페달을 본격적으로 밟기 시작한 상황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양측의 접점 모색을 도울 가능성을 내다보는 시각인 셈이다.

특히 이번 북.일 양자가 과거처럼 6자 틀과 무관하게 이뤄진 게 아니라 6자회담의 밑에 부속돼 있다는 점을 긍정적인 대목으로 꼽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다자 틀 속의 접촉이라는 점에서 종전처럼 결렬되면 다시 만나기 힘들거나 무작정 평행선을 달릴 수 있는 구도가 아니라 나머지 4자로부터 보이지 않는 압력을 받을 수 있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북.일 양자의 충돌이 과거 6자회담에서처럼 일시적인 걸림돌로 그칠 것으로 보는 관측이 일단 우세한 편이지만 양측이 끝까지 접점을 찾지 못하면 6자회담의 진전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장애로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기자 prin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