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해 외국 로펌이 들어올 수 없는 송무 분야를 강화하겠습니다."

국내 1위 로펌인 김앤장의 고위관계자는 최근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제일 먼저 매를 맞는 곳은 김앤장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국내 기업이 주요 고객인 대부분의 로펌과 달리 출범 초기부터 외국계 기업들에 대한 자문 업무를 도맡아온 김앤장이 법률시장 개방과 동시에 외국계 로펌들의 1차 타깃이 되리라는 설명이다.

"외국 로펌의 공세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김앤장 고위관계자의 이 같은 발언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

법률시장 개방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내 1위 로펌조차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어서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정부 관계자는 "단계적 개방에 대해 한·미 양국이 공감하고 있으며 현재 단계별 개방 폭을 놓고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전면개방의 칼날은 피했지만 국내 로펌들이 준비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는 설명이다.

김앤장이 '소송에 관한 업무인 송무(訟務)부문 강화'라는 구체적 해법을 제시한 것도 처음이어서 주목된다.

실제로 김앤장은 최근 5년간 32명의 퇴직 판·검사를 영입하는 등 차분히 준비를 해왔다.

18년간 여러 단계를 거친 끝에 2005년 4월 법률시장을 전면 개방한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된다.

오사카 최대 로펌인 오에바시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어설픈 국제화로 조직의 역량을 분산시키느니 국내 법과 송무 분야만 파고들겠다"며 "어차피 외국 로펌들의 진출 영역은 자국법 자문에 한정될 것 아니냐"고 말했다.

국내 5대 로펌 가운데 기업자문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광장과 세종도 최근 송무부문 강화에 나섰다.

최근 몇 년간 전관 영입이 드물었던 광장의 경우 지난해 이규홍 대법관을 영입한 데 이어 조만간 검사장급 퇴직 검사를 스카우트하기로 했다.

김재훈 광장 변호사는 "기업자문 특허 송무 금융 등 네 분야의 균형 성장을 추구하지만 올해는 형사송무팀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화우와 태평양은 전관 출신이 많아서인지 송무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와 관련,일본 로펌업계에 정통한 이후동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민·형사 송무 등 국내법 관련 사건은 외국 로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영역이어서 단기적인 대책은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대형화·전문화로 경쟁력을 높여 국내 의뢰인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화·대형화라는 정형화된 대책도 시장개방 준비 차원에서 꾸준히 추진되고 있다.

법무법인 충정은 지난달 애플 지멘스 아우디 등 다국적기업 전문 로펌인 '서울로그룹(Seoul Law Group)'을 인수합병했다.

서울로그룹을 이끌다 충정에 합류한 손도일 변호사는 "송무 등 다양한 분야의 인력을 확보한 충정과 외국계 고객 기반이 넓은 서울로그룹의 합병으로 시너지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동인은 지난해 6월 법무법인 휴먼과 합병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M&A 전문인 법무법인 다인까지 흡수합병,총 32명의 변호사를 둔 중견 대열에 우뚝 올라섰다.

이에 앞서 올해 초에는 중견 로펌인 법무법인 한결이 법무법인 내일과 합병하고 밝은미래 법률사무소가 에버그린 법률사무소와 전격적으로 통합하는 등 짝짓기를 통한 덩치키우기가 계속되고 있다.

해외 진출이라는 역발상으로 시장개방의 파고를 극복하려는 사례도 적지 않다.

법무법인 정평이 대표적이다.

이미 베트남 현지에 3명의 변호사를 파견했으며,국내에서도 5명의 변호사로 베트남팀을 구성해 현지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춰놓고 있다.

가족까지 모두 베트남으로 이사한 임재철 변호사는 "대형 로펌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틈새시장에 집중해 확실한 비교우위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베트남에 '올인(all in)'할 생각"이라며 "현재 법률자문 외에도 부동산개발과 공기업 민영화시장에서의 비상장주식 투자 등 컨설팅 업무를 추진 중이며,건설프로젝트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정태웅·이태훈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