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무주택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2017년까지 달성키로 한 '임대주택 340만가구 공급 계획'이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똑같은 중산층용 임대주택인데도 택지공급 가격 기준이 제각각인가 하면 국민주택기금을 지원받는 민간 임대주택의 임대보증금 보증가입 의무화는 가입시한이 두 달이나 지났는데도 가입률이 5%도 안 되는 등 겉돌고 있다.

여기에 1·31 부동산 대책에서 도입키로 한 비축용 중·대형 임대주택은 주택공사와 토지공사 간 '밥그릇' 싸움까지 벌어져 정부가 급기야 주공 관계자를 문책하는 등 임대주택 정책이 혼선을 빚는 양상이다.

◆중·대형 임대 택지값 기준 제각각

14일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중·대형 임대주택은 비축용,10년짜리 임대,전·월세형 등 크게 세 가지다.


문제는 똑같이 중산층용 임대주택인데도 택지공급가격 기준과 재정지원 여부가 달라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비축용 임대주택은 택지를 조성원가로 공급하고 연간 5000억원 규모의 재정도 지원된다.

반면 10년짜리 임대주택과 전·월세형은 재정지원이 없으며 택지도 조성원가보다 비싼 감정가로 공급된다.

이에 따라 비축용 임대는 보증금과 월임대료가 10년 임대나 전·월세형보다 훨씬 싸 수요가 몰릴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2012년까지 공급될 10년 임대와 전·월세형은 13만7000여가구나 되지만,비축용 임대에 밀려 수요 부족으로 목표 달성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이들 임대주택은 공공택지에서 10% 이상을 의무적으로 공급하게 돼 있어 해당 택지가 오랫동안 빈 땅으로 방치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임대보증금 보증가입 의무화 겉돌아

민간업체들이 국민주택기금을 지원받아 공급하는 임대주택(민간 공공임대)은 임대보증금 보증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돼 있지만,실적은 극히 저조하다.

전체 가입대상 33만여가구(880개 단지) 중 지금까지 1만5500여가구(74곳)가 가입,가입률은 4.6%에 불과하다.

보증료 부담이 너무 커 차라리 벌금(1000만원 이하)을 내고 말겠다는 업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들이 "가입은 나중에 하더라도 신청서만 내면 처벌하지 않겠다"는 편법까지 동원해 가며 가입을 독려하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

5년 임대주택을 10년짜리 임대로 전환하겠다는 정부 방안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17년까지 25만가구의 임대주택을 추가로 확보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5년 임대의 75%가 분양전환 수요가 거의 없는 지방 중소도시에 산재해 있어 무의미한 정책이라는 평가다.

한 전문가는 "지방은 집값이 거의 오르지 않아 임대주택 세입자들이 분양전환받기를 꺼리기 때문에 가만 놔둬도 장기 임대가 될 것"이라며 "탁상행정의 표본"이라고 꼬집었다.

◆현실 무시한 정부 과욕 자제해야

상당수 전문가들은 임대주택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의 과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임대보증금 보증제도 같은 것은 당사자인 업체들의 부담능력 등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애초부터 제도 설계가 잘못됐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이들은 자칫 서민들의 높아진 기대치만큼 되레 실망감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속도를 조절해야 하며 새로운 청사진을 내놓기보다 국민임대주택 등 기존 정책을 손질하는 게 우선이라고 충고한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단기간에 너무 많은 유형의 임대주택 공급방안이 추진되면서 소비자들도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며 "주택 공급방식이나 물량 목표 등 임대주택 정책 전반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황식·이정선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