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통합신당파 일각에서 당내 최대 주주격인 김근태(金槿泰) 의장과 정동영(鄭東泳) 전 의장이 정계개편 논의의 전면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2선 후퇴론'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통합신당'이 우리당내에서 대세를 형성하면서 이제는 신당파 내부에서 주도권 다툼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같은 논란은 지난달말 김 의장과 정 전 의장이 긴급회동을 통해 `원칙있는 국민의 신당' 창당에 합의, 사실상 신당창당 논의의 전면에 나선 데서 촉발됐다.

특히 당내 보수실용파를 대변해온 강봉균(康奉均) 정책위의장이 개혁파의 수장인 김 의장의 정책노선을 `좌파'라는 표현을 동원, 공개 비판하고 나선 데 대해 김 의장측은 강 정책위의장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맞받아치면서 `2선후퇴' 논란은 한층 가열될 조짐이다.

◇2선 후퇴론 = 우리당 재선그룹인 김부겸(金富謙) 정장선(鄭長善) 조배숙(趙培淑) 안영근(安泳根) 의원 등은 3일 오전 회동을 통해 두 전.현직 의장이 전면에 나설 경우 신당 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 참석자는 "`도로 민주당'도 곤란하지만 두 전.현직 의장이 신당 논의에 앞장을 서게 되면 `도로 우리당'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같은 입장을 성명서 등의 형식을 통해 공개적으로 밝히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또 안영근 의원을 비롯한 우리당의 중도보수 성향 의원들과 민주당의 친(親) 고건파 의원 등 10여명이 `통합신당 추진을 위한 공동모임' 결성을 추진하면서 김 의장과 정 전 의장의 2선 후퇴 또는 백의종군을 요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선 후퇴론'의 배경에는 여당의 대권주자인 두 사람이 신당을 주도하는 모양새를 띨 경우 고 건(高 建) 전 총리, 정운찬(鄭雲燦) 전 서울대총장 등 외부 주자들의 합류를 오히려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논리도 담겨있다.

강봉균 정책위의장은 4일 조간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부동산정책, 대북 포용정책,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정책 등을 거론하면서 "김 의장이 당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김 의장이) 백의종군하거나, 다른 길로 가야 한다.

갈라서는 것이 해결방법은 아니지만 생각을 바꾸든가, 아니면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당내 진보개혁 진영 일각에서도 전.현직 의장들이 정계개편 전면에 나서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개혁성향 재선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두 전.현직 의장의 회동과 합의문 발표는 마치 과거 보스정치의 구태를 보는 것 같았다"면서 "두 사람 모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결별할 용기도 의사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런 식으로 신당 논의의 전면에 나서면 통합신당 자체가 노 대통령의 틀에 갇히는 결과를 가져와 실패하게 된다"며 2선 후퇴론을 폈다.

당 밖에서도 `2선 후퇴론'이 나왔다.

민주당 조순형(趙舜衡) 의원은 3일 라디오에 출연, 김 의장과 정 전 의장의 합의에 대해 "국정운영 실패 책임을 노 대통령에게 돌리고 다음 대선과 총선에서 살아남겠다는 당리당략"이라며 "우리당 창당 주역인 두 사람은 정계개편 논의에서 2선에 있겠다든가 하는 의사표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GT.DY측 반격 = 이날 경기 광명시 기아자동차 현장 방문에 나선 김 의장은 "여러 고민끝에 나온 얘기로 생각한다"며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을 수 있으나, 긍정적 방향으로 지금까지 왔다고 본다"며 원론적인 답변에 그쳤으나, 측근들은 발끈했다.

김 의장 측근인 우원식(禹元植) 의원은 성명을 통해 "아파트 원가공개 찬성, 대북 포용정책 유지, 신중한 한미 FTA 접근과 같은 정책이 바로 `좌파정책'이라는 강봉균 정책위의장의 주장은 변형된 색깔론"이라며 "강 정책위의장이 뒤늦게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아파트 원가공개나 대북 포용정책을 좌파로 몰아붙이는 그가 어떻게 1년간 정책위의장으로 있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 의장의 다른 측근은 "(2선 후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봐도 그렇고 노선투쟁이 시작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서 "두 분이 만나서 합의한 것은 신당의 가치와 철학, 지향성 등에 있어서 중도개혁 세력의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데 이에 대한 (보수성향 의원들의)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측근은 특히 강 정책위의장에 대해서는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하는 민간아파트 분양원가 공개같은 정책을 반대하고 특권 건설족(族)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강봉균류'의 사람"이라면서 "개성공단, 금강산, PSI 등의 문제도 개인생각을 앞세워서 사사건건 당의 정체성을 이반하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라면 강 정책위의장이 우리당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직설적으로 공격했다.

정 전 의장의 측근은 "고건 전 총리측에서 보수성향 일부 의원을 앞세워 우리당 흔들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며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며 그럴수록 고 전 총리의 이념과 본질이 드러날 뿐"이라며 고 전 총리측을 겨냥했다.

우리당 핵심당직자는 "강 정책위의장이 정계개편의 주축이 아니기 때문에 주장을 과도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면서 "PSI, 부동산 정책 등에서 이견이 있어왔는데 관료 출신으로서 김 의장과 이미경(李美卿) 부동산특위 위원장에게 한 방 먹이려고 한 것 아니겠느냐"며 신당 `노선투쟁'이라는 해석을 부인했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기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