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백남순 북한 외상은 북한 최고의 남북 대화 전문가였다.

남북적십자회담의 북측 자문위원이었고 남북고위급회담에선 북측 대표로 활동했다.

1970년대 이산가족 생사 확인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북측 자문위원으로 7회에 걸쳐 모든 회담에 참석했다.

1988년 남측에 새정부가 들어선 후 북측의 제안으로 남북고위급회담이 시작되자 회담이 8차에 이르기까지 북측 대표를 맡았다.

1·3·5·7차 회담은 서울에서 열려 방한한 경력이 있다.

1994년 김일성 국가 주석이 사망하기 직전 남북 간 정상회담의 가능성이 모색되자 실무 절차협의를 위한 대표접촉에 나서기도 했다.

대남 접촉 땐 항상 백남준이라는 가명을 썼다.

대남엄무를 담당할 때 김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독대해 의견을 개진할 정도로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측에는 각종 회담을 통해 합리적인 인사라는 이미지를 남겼다.

백 외상이 국제 관계 업무를 시작한 것은 1968년 국제부 부부장이 되면서부터였다.

이후 1974~79년 폴란드 대사로 나간 것을 제외하면 줄곧 대남 업무에 집중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남북고위급회담 정치분과위원회 위원장등의 직함을 거쳤다.

1998년 9월 외상으로 임명되면서 대남 사업에서 물러나 국제 외교 무대에서 활동했다.

통일부가 2005년 발간한 북한인명사전에 따르면 백 외상은 1929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출생지에 대해선 량강도라는 설이 더 유력하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으며,장남 백낙천 등 4남1녀를 뒀다.

말년에는 지병으로 고생했다.

지난해 7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위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했을 때도 싱가포르에 들러 신장 투석을 받고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